‘창백한 푸른 점’ 지구와 보이저호
지금으로부터 41년 전, 8월 20일에 인류가 만든 것 중 ‘가장 멀리 날아갈 물체’가 지구를 떠나게 된다. 바로 ‘여행자’라는 이름을 가진 우주탐사선 ‘보이저(Voyager) 2호’이다.
보이저호(1호, 2호)는 미국 NASA가 주로 목성과 토성 등을 탐사하기 위해 만든 무게 700kg 정도의 쌍둥이 탐사선이다. 보이저 2호가 1977년 8월에 발사되었으니 순서상 1호는 그 이전에 이미 출발했을 것 같지만 그렇지는 않다. 보이저 1호가 발사된 건 2호가 떠난 지 보름후인 9월 5일이다. 당초 NASA는 1, 2호를 동시에 쏘아 올리려 했지만 1호기가 문제를 일으키는 바람에 이렇게 시차를 두게 두었다.
<사진출처: NASA Voyager>
탐사선을 발사시킨 그 해는 175년에 한 번씩 태양계 행성이 일직선이 되는 기간이다. 행성 간 여행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더없이 좋은 기회였던 것이다. 목성에 먼저 도착한 것은 늦게 출발했던 보이저 1호였다. 지구를 출발한 지 1년 6개월 만의 일이다. 1979년 3월에 목성을, 1980년 11월에 토성을 지나가면서 이 행성들과 그 위성들에 관한 데이터를 쏟아낸 보이저 1호는 현재 지구와 206억km 거리에 있는 ‘인터스텔라’를 탐험중이다. 성간우주라고 불리는 별과 별 사이의 까마득한 공간을 통과하고 있는 것이다.
보이저 2호도 목성(1979.7)과 토성(1981.8)을 거쳐, 천왕성(1986.1)과 해왕성(1989.8)까지 탐사했다. 정해진 임무를 마쳤지만 항해를 멈추지 않고 태양계 외부 우주공간과의 경계지대인 헬리오스시스(Heliosheath)에 진입해 있다. 이처럼 인간이 보낸 우주의 척후병, 보이저호는 원자력 전지의 수명이 다하는 2020년까지는 지구와 교신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비록 회신까지 하루 반의 시간이 걸리더라도 말이다.
우리가 보이저호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또 다른데 있다. 바로 천문학자인 칼 세이건 박사의 아이디어로 보이저호에 지름 30cm 크기의 ‘골든레코드(Voyager Golden Record)’를 실어 보냈기 때문이다. 이 황금레코드 안에는 지구를 소개하는 55개 인사말(한국어포함)과 자연 영상, 소리 그리고 클래식과 대중음악 등이 녹음돼 있다. 보이저호가 외계인과 만났을 때, 지구라는 행성이 있고 거기에 인류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전하기 위해서이다.
이 골든레코드가 ‘지구인용’ 레코드판(LP)으로 제작돼 일반에 판매된다고 해서 지난해말 이슈가 되기도 했다(사실, 아이러니하게도 또 다른 이슈는 40년이 지난 지금도 외계인에게 지구의 알짜(?) 정보를 노출하는 게 옳은지의 여부를 논쟁하고 있다는 것이다). 칼 세이건은 “이 우주에 지구에만 생명체가 존재한다면 엄청난 공간의 낭비”라는 명언으로 골든레코드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큐브샛과 보이저가 뒤돌아 본 작은 점
최근, NASA가 공개한 사진 한 장에서 보이저호가 다시 거론됐다. 화성으로 향하던 큐브샛(초소형 위성) ‘마르코(MarCo)’가 지난 5월 8일 100만km 떨어진 심연의 어둠 속에서 작은 점으로 빛나는 두 천체를 찍은 사진이었다. 바로 우리가 사는 지구와 달이다. NASA 제트추진연구소의 담당자는 “이 사진을 보이저호에 대해 경의를 표한 것으로 봐 달라”고 말했다.
사연은 이렇다. 지금으로부터 28년 전인 지난 1990년, 보이저 1호가 태양계를 벗어나기 전 카메라를 지구 방향으로 돌렸다. 당시 보이저 1호와 지구와의 거리는 약 60억km. 여기서 그 유명한 ‘창백한 푸른 점’ 지구가 등장한다. 칼 세이건은 1994년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이라는 저서에서 “지구는 우주에 떠있는 보잘 것 없는 존재에 불과함을 사람들에게 가르쳐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렇잖아도 이 펄펄 끓는 8월에, 거리도 가늠하기 힘든 우주에 날아다니는 탐사선 이야기를 왜 끄집어냈는지 의아해하는 독자도 있겠다. 하지만 그 창백한 푸른 ‘점’ 사진을 책상 앞에 붙여놓거나 휴대폰 바탕화면이라도 깔아 놓아 보자. 이 죽음 같은 더위도, 인간의 다툼과 죽음도 다 부질없는 짓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물론 이 광활한 우주에서 한 생명체로 산다는 것 자체를 경이로운 일로 여기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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