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일이 터졌다. 우버(Uber) 자율주행차가 주행중 사고를 냈다. 이 사건이 주목받고 있는 이유는 자율주행차가 낸 첫 번째 보행자 사망 사고이기 때문이다. 자율주행차로 인한 인명사고는 지난 2016년 테슬라 자율주행차가 플로리다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트럭과 부딪혀 운전자가 숨진 이후로 두 번째이다.
이번 사고로 우버는 물론, 자율자동차를 테스트하던 대부분의 기업들도 일제히 시험 운행을 일시 중단했다. 자율차가 이슈로 등장하면서 우려되었던 안전성, 윤리 문제가 다시 논란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모르긴 몰라도 자율자동차의 역사는 이번 보행자 사망 사고, 이전과 이후로 나뉘게 될 것이다. 아직 사고의 원인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사망자를 추도하는 한편으로 사건을 냉정(?)하게 바라보자는 전문가 의견이 잇따르고 있다. 이번 사건으로 자율주행차 개발과 추진이 ‘위축’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우버 자율차 사고를 속보로 전한 미 abc 방송 장면, 유투브 영상에서 캡처함>
#기어이, 사달이 났다. 지난 연말연시를 뜨겁게 달구었던 가상화폐 투자를 두고 하는 말이다. 말 그대로 롤러코스터처럼 투자 열풍이 일고 꺼지며 요동쳤다. 가상화폐를 구매하는 데는 남녀노소가 따로 없었다. 누구는 돈을 얼마 벌었다라는 ‘카더라’ 통신이 난무했다. 원래 주식이 그러하지 않은가. 남이 잘 된다라는 소식이 내 귀에 들어왔을 때는 이미 늦었다는. 급기야 투자자가 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나면서, 사태가 사회적인 문제로 비화되자 정부가 나섰다.
가상화폐를 규제하겠다고 강수를 둔 것이다. 하지만 가상통화 규제로 블록체인 기술이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 한발 물러섰다. 4차 산업혁명을 강조하는 시대에 역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업계와 기술 옹호론자들은 말한다. 투기는 막되 기술 발전이 위축되어서는 안 된다고. 정부당국의 고민은 더욱 깊어졌다.
이처럼, 사람들은 사고나 부작용을 우려하면서 ‘무슨 일이 있어도 기술 발전은 계속되어야 한다’고들 말한다. 설사 문제가 생긴다 해도 ‘위축’되지 않고 헤쳐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인류 문명의 역사 자체가 그렇게 ‘위축’되지 않으면서 극복해 온 시간이 아니었던가. 발전이라는 미명 아래, 자연 환경에 ‘위축’되지 않고 혹은, 종교와 이념의 배타성에 ‘위축’되지 않으면서 견뎌오지 않았던가. 그런 의미에서 발전은 ‘희생’의 다른 이름이다. 사람의 존재 가치인 생명도 방해가 된다면, 그 앞에서 ‘위축’ 당하지 않기 위해 과감히 희생을 선택한 것이다.
그런데,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발전을 위한 맹목적인 희생이 무조건 정당화되어야 하는지, 인간을 위한 발전이 인간을 희생시킨다는 논리가 평화를 위해 전쟁을 해야한다는 논리와 무엇이 다른지. 희생을 감수해서라도 기술 발전은 ‘위축되지 말아야 한다’는 이들의 발언이 때론 무책임하고 때론 무모해 보일 때가 있다.
앞으로도 자율차 기술 개발과정에서 이런 사고가 없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특히 자동차는 0.00001%의 오류도 사고로 이어질 수 있고 그것이 사람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힐 수 있기 때문이다. 가상화폐도 마찬가지다. 기존의 중앙 통제를 벗어나는 화폐가 제 역할을 하고 기능하기 위해서는 그 자체를 제어하고 투명하게 만드는 기준이 철저히 마련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투기와 같은 부작용만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 자명하다.
기술 개발 부작용에 따른 우려와 두려움이 현실화될 때에도 위축되지 말고 그냥 ‘가즈아~’라고 말할지 궁금하다. 불가피한 사고로 기술 개발이 위축되어서는 안 되지만, 기술 발전이라는 이유로 ‘희생과 부작용’이 정당화되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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