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 간 반도체 산업에서의 가장 큰 이슈는 M&A다. 환율, 글로벌 경제 위기, 전방산업의 수요 부진 등으로 시장상황을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 무엇보다 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반도체 업계는 새로운 돌파구로 M&A에 몰두하고 있다.
2015년부터 이어지고 있는 반도체 업계에서의 초대형 M&A는 시장 판도를 뒤흔들 정도로 강력했다. 딜로직에 따르면 2015년 세계 M&A 거래 대금은 5조 달러였으며, 이 중 반도체 업계의 M&A는 1,400억 달러(2015년 12월 기준)였다. 반도체 업계의 M&A는 2014년 369건에서 2015년 276건으로 감소했지만, 규모 면에서는 377억 달러에서 1,400억 달러로 4배가량 증가했다. 이는 아바고(Avago)의 브로드컴(Broadcom) 인수(370억 달러)를 비롯해 100억 달러 이상의 대형 M&A가 지속적으로 발생해서다(표 참고).
대형 M&A는 2016년에도 지속되고 있다. 소프트뱅크(Softbank)가 ARM을 320억 달러에 인수했으며, ADI(Analog Device)는 리니어 테크놀로지(Linear Technology)를 148억 달러에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이러한 대형 M&A는 대부분 특정 사업영역에서의 강자가 다른 사업 영역의 강자를 흡수 합병하는 형태였다. 인텔(Intel), NXP 등의 기업이 하나의 기술을 다른 기술과 융합해 사업범위를 늘리는 방식의 전략을 선택하고 있는 것이다.
대형 M&A에 담긴 의미
차량용 반도체 분야에서 르네사스(Renesas)와 인피니언(Infinion)에 이어 3위를 기록하고 있던 NXP는 자동차용 MCU와 IoT 분야의 반도체에 강점을 보유한 프리스케일(Freescale)의 인수로 자동차용 반도체 분야에서 1위에 올라섰다. 기술 발전 속도가 빠른 반도체시장에서 시장점유율을 단시간에 극복하는 방법은 M&A가 최적이다.
NXP의 M&A 전략은 차량용 반도체 분야에서 세계 1위로 올라서는 것과 NXP에는 없는 기술을 보유한 기업을 인수하는 것이었다. 실제 NXP는 IDT와 CSR도 인수후보로 염두에 두었지만, IDT의 경우는 중복 사업이 많았고 CSR은 시너지를 낼수 있는 분야가 전체의 4분의 1 밖에 되지 않아 매력도가 떨어졌다. 반면 프리스케일은 겹치는 사업 분야가 RF 밖에 없었다. 합병 이후 NXP는 중복되는 RF 파워 부문을 중국의 지안광에셋매니지먼트에 18억 달러에 매각했다.
NXP가 프리스케일 인수로 자동차 분야 시장을 선점하는 것과 IoT 시장의 진출을 노렸다면, 인텔의 알테라(Altera)인수는 사양길에 접어든 PC 시장을 대신할 돌파구로 IoT 시장을 공략하기 위함이었다. 인텔의 사업 포트폴리오는 마이크로프로세서 사업에 편중되어 있다. 다양한 사업 다각화의 노력도 기울였지만, 엄청나게 확대되고 있는 IoT 시장을 공략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IoT시장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FPGA 기술이 필요했지만, 인텔 내부에는 해당 기술을 보유하고 있지 않았다.
따라서 인텔은 빠른 시일 내에 FPGA 기술을 확보해 IoT 시장에 대응해야 했고, 이 속도를 맞추기 위해 M&A를 결정하게 된 것이다. 알테라는 FPGA를 제조하는 팹리스로 네트워크 통신 장비 분야에서 세계 2위를 기록하고 있는 기업이었고, 인텔의 데이터센터 부문을 IoT로 확장하는 데 있어 시너지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아바고는 2013년 이후 LSI와 에뮬렉스(Emulex) 등을 비롯해 5개 기업을 매수하는 등 주로 M&A를 통해 기업 규모를 확대하며 네트워크 칩과 메모리, 네트워킹 장비 사업 등으로 사업을 넓혀 나갔다. 아바고는 최근 몇 년 간 반도체 산업의 성장률이 둔화되고 있는 반면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통신 분야에 좀 더 집중할 필요성을 느꼈다.
통신 분야의 선두기업인 브로드컴을 인수할 경우 시너지 효과를 통해 시장지배력을 바탕으로 성장을 이어나갈 수 있다고 판단했다. 아바고는 매출 규모면에서 브로드컴의 1/2 정도에 지나지 않지만, M&A로 통신 반도체 분야에서의 선도적 지위를 확보할 수 있었다. 아바고는 지명도가 높은 브로드컴의 사명을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소프트뱅크의 ARM 인수 역시 IoT 시장을 겨냥한 것이며, 르네사스의 인터실 인수는 자율주행차와 전기차 등 엔진 전자제어에 특화한 반도체 생산을 통해 NXP의 프리스케일 인수로 빼앗긴 차량용 반도체 시장을 탈환하기 위함이다.
중국의 M&A 도전 계속된다
중국 역시 M&A 대열에 합류해 반도체 산업에 적극성을 보여 왔다. 마이크론을 비롯해 샌디스크 등 막강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M&A를 추진했지만, 번번히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와 같은 미국 내 정부기관에서 제동을 걸어 무산됐다. 2013년 말부터 2016년 6월까지 중국이 국내외 주요 반도체 기업의 인수 완료 및 진행 건은 모두 15건으로, 인수 금액은 103억 5,000만 달러에 달한다.
특히 올해는 중국 칭화유니그룹이 2013년 12월 미국에 상장한 세계 10위 중국 팹리스인 스프레드트럼을 17억 8,000달러에 인수했고 2014년 7월에는 RDA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를 9억 달러에 인수하면서 중국 최대 반도체 설계 기업으로 성장했다. 이어 올해 4월에는 미국 래티스 반도체의 지분 6%를 사들인 데 이어, 5월에는 지분을 8.65%까지 확대했다.
또한 난징롄촹과기는 통신용 반도체 기업인 IDT를 약 43억 달러에 인수하기도 했다. 이처럼 중국 정부가 반도체를 미래 주력산업으로 지목해 1,200억 위안 규모의 자금을 지원함에 따라 적극적으로 M&A에 뛰어들고 있는 추세다. 이는 중국 내 반도체 시장이 점점 커지고 있는 반면 핵심 기술력이 부족했고 반도체 자급률도 낮아 자체 생산력을 확보하고 반도체 시장에서의 우위를 점하기 위함이다. 중국 정부의 핵심 투자 기간은 2018년까지로, 중국 기업들이 해외 반도체 기업 타깃의 M&A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반도체 분야 M&A의 특징
최근 일어나고 있는 반도체 업계에서의 M&A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경계가 모호해졌다. 과거 반도체 시장은 PC용, 서버용, 모바일용, 가전용, 그래픽용, 자동차용 등으로 분야별로 특화된 시장을 형성하고 있었다.
인텔은 서버나 PC에서, 퀄컴은 모바일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M&A 역시 사업 영역이 겹치는 기업을 대상으로 이뤄지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인텔이 인수한 알테라는 FPGA 전문 기업이고, 퀄컴이 인수한 CSR은 블루투스에 강점을 보유한 기업이었다. NXP와 프리스케일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서로 다른 분야의 M&A였다.
이는 모든 기기가 연결되는 IoT 시대가 다가오면서 기기마다 정보 교환과 이동, 해석을 담당하는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 센서, 메모리 등을 갖춰야 했기 때문이다. 즉 이들을 하나로 합쳐 단일 칩으로 만드는 등 시장의 흐름에 맞는 기술 및 제품별 융합이 일어나고 있어, 이러한 트렌드를 읽은 반도체 기업들이 앞장서 서로다른 분야에서 강점을 보유한 기업들과 M&A를 추진했다.
둘째, 시장 점유율 경쟁이 치열해졌다. 다른 산업과 마찬가지로 반도체 산업은 규모가 커지고 기술력을 확보할수록 기술 표준화를 비롯해 시장에서의 영향력은 물론이고 점유율 역시 확대할 수 있다. 특히 기업 규모에 따라 원가경쟁력 확보, 원자재 확보, 판매망 확보에 유리한 입지를 선점할 수 있다. NXP가 프리스케일 인수 후 곧바로 자동차용 반도체 분야에서 1위를 올라선 점이나, 위기를 느낀 르네사스가 M&A를 통해 곧바로 추격하면서 관련 시장 판도가 예측 불가한 상황에 접어든 것이 그 예다.
셋째, IoT 시장에서의 우위 확보가 중요해졌다. 소프트뱅크의 ARM 인수, 아바고의 브로드컴 인수만 보더라도 IoT시장의 성장성이 얼마나 큰 지 알 수 있다. 2020년이면 400~500억 개의 기기가 연결된다는 전망처럼, 향후 네트워크 수요의 급증과 함께 센서, 컨트롤러 시스템, 중앙 집중형 컴퓨팅 시스템 등 반도체가 필요한 시장은 엄청나게 증가하게 된다.
특히 IoT는 기술과 기술의 결합이 중요하다. 사물과 사물이 이어지려면 무선 통신 기술도 필요하고 사물을 컨트롤할 수 있는 임베디드 시스템도 필요해진다. IoT의 또 다른 특징은 대형 고객이 존재하기보다 수천, 수만 명의 작은 고객들이 서로 다른 시장에서 사업영역을 확보해 나아간다는 점이다. 따라서 협업 관계 구축이 중요해진만큼, 반도체 업계는 고객이 원하는 제품을 생산하고 유통하기 위한 돌파구가 필요해졌다.
넷째, 외부자원 확보가 필요해졌다. 중국의 경우, 2015년 반도체 수입이 총 수입액 중 13.7%(2,191억 달러)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중국 시장을 겨냥한 글로벌 기업들의 생산 공장 현지화가 진행되고 있어 중국 입장에서는 반도체 산업을 빠르게 육성하려면 M&A가 불가피한 상황이 됐다. 또한 소프트뱅크가 성공적으로 반도체 설계 기술이 중요해질 IoT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자체적으로 기술을 개발하기보다 ARM과 같은 기술력과 시장지배력이 탄탄한 기업을 인수해 외부자원을 확보하는 것이 효율적일 수 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리스크 관리를 줄이기 위한 목적이 담겨 있다. 규모가 큰 기업일수록 시장의 요구를 따라가기 어렵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따라서 새로운 시장에 진출하거나 시장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빠르게 기술을 개발하고 투자를 감행하기보다 특정 분야에 강점을 지녔거나 기술력을 가진 기업을 인수함으로써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것이 현명하다. 또한 인텔의 알테라 인수에서 알 수 있듯이, PC 시장처럼 시장상황이 악화될 경우 반드시 새로운 분야로 다각화할 필요가 있다.
반도체 시장은 다른 산업보다 변화의 속도가 매우 빠르다. 그래서 반도체 기업들도 기존 시장에서 사업을 지속시키기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다행인 점은 변화속도가 빠른 상황에 익숙한 반도체 기업들은 스스로 돌파구를 찾기위해 새롭게 성장하고 있는 시장에 진입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원래 영위하던 분야에서도 경쟁력 확보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점이다. 변화속도가 빠르다는 것은 새로운 시장에 진입하려는 기업 입장에서 매우 곤란한 부분이다. 기술개발과 설비에 과감한 투자를 하는 데 망설이는 요인이기 때문이다.
즉 반도체 기업들이 이러한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전도유망한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M&A를 선택하는 분위기는 당연하다 볼 수 있다. 예측하겠지만 반도체 기업들의 M&A는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따라서 반도체 기업들은 M&A 전략을 수립하는 데 있어 인수대상 기업과의 적합도와 인수 후 시장에서의 효과성을 면밀히 검토해야만 한다. 또한 보완을 통한 시장에서의 경쟁우위를 확보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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