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기연구원, 전기車 핵심 부품 제조기술 이전
신소재 ‘탄화규소’ 이용한 전력반도체 국산화 길 열어
  • 2016-01-08
  • 김언한 기자, unhankim@elec4.co.kr

전기자동차의 에너지 효율을 획기적으로 올릴 수 있는 핵심 부품 기술이 국내 연구진의 끈질긴 노력 끝에 개발돼 국내 전문 기업에 이전된다. 한국전기연구원은 지난 12월 14일 메이플세미컨덕터사(社)와‘탄화규소(SiC) 전력반도체 기술’ 이전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기술료는 착수 기술료 11억 5,500만 원에 향후 추가로 매출액 대비 러닝로열티를 받는 조건이다. 전력 반도체 분야에서 최대 규모다.

 

탄화규소 전력 반도체 세계 시장 규모는 2014년 기준 1억 4,600만 달러다. 성장에 성장을 거듭해 2020년 10억 9,500만 달러(약 1조 2,59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응용 분야 중 자동차용(HEV/EV) 성장 속도가 가장 빠르다. 2020년 예상되는 자동차용 세계 시장 규모는 2억 7,100만 달러다.

자동차용 핵심 부품으로 탄화규소 전력 반도체가 주목받고 있다. 뛰어난 물성 때문이다. 기존 실리콘 반도체에 비해 전력을 덜 사용하며 열도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전기자동차에 적용 시 반도체 자체의 고효율 특성과 더불어 냉각 장치의 무게와 부피까지 줄일 수 있다. 연비(에너지 효율)가 크게 개선되는 것이다.


해외 매출액 1,500억 원 기대

기술을 이전받은 메이플세미컨덕터의 박용포 대표 역시 탄화규소 전력 반도체를 전기자동차용 반도체의 주역으로 보고, 양산화를 준비 중이다.

박용포 대표는 “향후 이 기술이 양산화되면 연간 국내 매출만 500억 원 이상, 해외 매출액은 약 1,500억 원까지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탄화규소 전력 반도체는 현재 실리콘(규소) 반도체가 장악하고 있는 연간 18조원 규모의 세계 전력 반도체 시장에 진입하는 단계에 불과하다. 하지만 일본 등 선진 자동차 업계는 일찍이 탄화규소 전력 반도체에 주목했다. 1990년대부터 연구를 진행해왔다.

특히 이 분야에서 가장 앞서 있는 도요타는 프리우스 3세대 모델에 탄화규소 전력 반도체를 채용해 전체 연비를 5% 향상시킨 바 있다. 5년 안에 연비를 10% 이상 향상시킨 전기자동차를 양산하겠다는 계획이다.

우리나라의 전력 반도체 연구 역시 1990년대부터 시작됐지만 세계 최고를 달리고 있는 메모리 반도체와 달리 연구 환경은 상대적으로 열악했다.
전기연구원 관계자는 “전기연구원은 출연(연) 원천기술연구의 일환으로 1999년부터 전력 반도체 관련 과제를 꾸준히 수행해왔다”며 “2012년부터 연간 20억 원씩 적극 지원한 전략이 결실을 맺었다”고 밝혔다.

이번 기술 이전에는 미국, 프랑스 등에서만 가능하던 전력 반도체 제조의 핵심 기술인 고온 이온주입 기술과 칩 면적과 전력 소모를 크게 줄인 다이오드 기술, 고전압 트랜지스터(MOSFET) 기술 등 그간 전기연구원이 축적해온 전력 반도체 관련 기술이 집약돼있다.

이번 기술 이전은 미래부의 출연금 사업을 통한 성과로 이뤄졌다. 미래부는 향후 출연연구원이 안정적인 예산을 통해 원천 연구를 수행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지원할 계획이다.

전기연구원 전력반도체연구센터 김남균 센터장은 “장기 원천 연구에 대한 신념과 함께 지속적인 기회를 발판 삼아 전력 반도체 연구 분야의 세계 1등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음은 김남균 전력반도체연구센터장과 나눈 인터뷰 전문.

 개발의 당위성

 Q. 탄화규소에 대한 쉬운 설명을 부탁드린다.

“탄화규소(SiC)는 탄소와 규소가 1:1로 결합된 화합물이다. 다이아몬드 다음으로 단단하고 실제 다이아몬드처럼 투명하다. 반도체 물질이지만 보석이나 다름없다.
탄화규소는 보석처럼 단단하고 화학약품에도 끄떡도 않으니 가공하기가 무척 어렵다. 따라서 반도체 칩으로 만들기가 몹시 까다롭다.”

Q. 그렇다면 현재 탄화규소를 이용한 SiC 전력 반도체 기술은 어디까지 와있나? 

“탄화규소는 뛰어난 물성을 갖췄지만 반도체 제조의 출발 물질인 고품질의 단결정 및 박막 제조 등이 어려워 일부 해외 선진 기업들에서만 연구돼 왔다. 특히 고가의 원료 물질과 새로운 소자 공정의 개발이라는 한계로 인해 현재까지도 SiC 전력 반도체를 양산한 곳은 몇 곳이 채 되지 않는다. 전 세계적으로

미국의 크리(Cree), 독일의 인피니언(Infineon), 일본의 롬(Rohm) 등 극소수에 불과하다.

Q. 왜 탄화규소 반도체 개발에 주력해야 할까?

“탄화규소 반도체는 같은 두께의 실리콘에 비해 약 10배의 전압을 견뎌낼 수 있다. 이는 10분의 1 두께만으로도 실리콘과 동등한 전압을 제어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만큼 전기 저항이 작아져 실리콘에 비해 전력손실(열 발생)이 거의 없다. 따라서 탄화규소 전력 반도체로 전기자동차 인버터를 제작하면 실리콘 반도체를 사용한 것보다 전력 손실도 줄고 무거운 냉각장치를 줄이거나 아예 없앨 수도 있다. 전력 손실도 줄이고 차제 중량도 줄어드니 이중으로 에너지 효율을 높일 수 있는 것이다. 탄화규소 반도체가 다가오는 전기자동차 시대의 핵심 경쟁력으로 떠오르고 있는 이유다.”

탄화규소, 그리고 전기자동차

Q. 기후변화를 비롯한 환경오염문제에 대한 관심도 이에 기여하고 있는 것 같다.

“2000년대 이후 전 세계 기후변화 및 화학연료의 고갈 문제 등으로 화학연료를 이용한 자동차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고 하이브리드 및 전기자동차에 대한 각국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미국, 일본, 독일 등에서는 전력 반도체 특히 신소재를 이용한 고효율, 고출력의 전력 반도체 개발과 상용화에 박차를 가해 왔다. 그리고 최근 들어 조금씩 성과를 내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전기자동차에서의 고효율, 고출력 전력 반도체는 단순한 차량 성능 향상을 위한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이미 규제 대상이 된 배기가스 억제, 연비 향상 등을 달성하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해결책으로 떠올랐다.

이런 배경에서 연비 1% 향상을 위한 자동차 업계의 전방위적인 노력은 상상 그 이상이다. 그런데 전기·하이브리드 자동차에서 실리콘 전력 반도체를 단지 탄화규소 전력 반도체로 대체하는 것만으로 무려 5%의 연비 향상 효과를 보았다면 어떨까. 믿기지 않지만 사실이다.”


 

Q. 입증할 만한 사례가 있나?

“자동차용 탄화규소 반도체 개발에 가장 앞선 업체가 도요타 자동차다. 최근 프리우스 모델에 탄화규소 전력 반도체를 사용해 무려 5%의 연비가 향상되는 성과를 거뒀다.

도요타는 프리우스 3세대 모델에 탄화규소 전력 반도체를 채용한 인버터를 시험한 결과 차량의 전력 시스템 손실을 무려 80%나 줄였고 궁극적으로 자동차 연비를 약 5% 향상시켰다고 발표했다.

도요타는 탄화규소 전력 반도체를 장착해 현재 기술보다 연비를 최고 10% 이상 향상시킨 하이브리드·전기자동차를 5년 내 양산한다고 공언하고 있다.”

Q. 우리나라의 개발 상황은 어떤가?

“국내 자동차 제조업체도 자체적으로 탄화규소 전력 반도체 연구 개발을 수년전부터 진행 중이다. 현대자동차는 2015년 11월 국내에서 개최된 한 학술대회에서 탄화규소 다이오드의 개발 결과를 처음으로 발표했다. 후발주자지만 현대자동차가 탄화규소 전력 반도체 개발에 의미 있는 진전을 이룬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자동차에 직접 적용하려면 반도체 특성의 향상은 물론, 여러 개의 반도체 칩을 집적해 패키징하는 이른바 전력용 모듈 기술도 발전시켜야 하는 과제가 남아있다.

한국전기연구원이 개발해 이전하는 기술이 메이플세미컨덕터에서 상용화되면 국내 자동차 업체의 경쟁력 향상에 직접적으로 기여하게 된다. 더욱이 전세계 시장으로 진출한다면 프리미엄 전력 반도체 시장에서 20% 이상 점유율도 가능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전망과 장·단점

Q. 탄화규소 반도체가 극복해야 할 점은 없을까? 

“탄화규소의 우수한 특성만 보면 당장 실리콘 반도체 시대가 끝날 것만 같다. 그러나 실리콘 시대는 쉽게 사라지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탄화규소에게도 약점이 있기 때문이다. 크게  두 가지다.

첫째, 비용 측면이다. 쉽게 말해 비싸다. 출발 물질도 비싸고 제조비용도 실리콘보다 비싸다.

우선 탄화규소 웨이퍼는 매우 비싼 공법으로 만들어진다. 약 2,400 ℃의 초고온에서 단결정을 성장시킨다. 또한 다이아몬드 다음으로 단단하니 얇은 판상의 웨이퍼로 가공하기 어렵다. 반도체 제조비용은 실리콘과 거의 유사한 수준이지만 적어도 싸지는 않다.

둘째, 탄화규소는 재료 내부의 결함이 너무 많다. 지난 20년간 상당히 줄어들었지만 아직은 실리콘보다 훨씬 결함을 많이 갖고 있다. 결함이 많다보니 웨이퍼 당 살아남은 칩의 개수가 상대적으로 적다. 이 역시 가격이 비싸지는 요인이다.

이 두 가지 요인으로 현재 탄화규소 반도체 칩 가격은 동등 성능의 실리콘보다 약 2 ∼ 5배 정도 가격 우위에 있다. 시장경제 체제에서 값이 비싸다는 것만큼이나 치명적인 약점은 없다.”

Q. 이런 단점을 어떻게 상쇄 가능한가?

“탄화규소가 ‘비싸다’는 결정적인 약점에 대해 개발자들은 낙관적이다. 대량 수요에 의한 대량 생산으로 웨이퍼 가격이 지속적으로 내려가고 있기 때문이다. 결함도 줄어들고 있다. 특히 2013년 6인치 웨이퍼가 출현한 데 이어 2020년경엔 8인치 웨이퍼도 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반적으로 더 큰 웨이퍼를 사용할수록 칩 당 가격이 저렴해진다.

가격 결정 요소 중에서 간과할 수 없는 탄화규소의 결정적인 장점은 두 가지다.

첫째, 실리콘에 비해 1/2 ∼ 1/5 면적으로 실리콘과 동일한 성능을 낼 수 있다. 즉, 같은 면적의 웨이퍼에서 실리콘보다 탄화규소 칩 수가 2 ∼ 5배 많이 생산된다. 그만큼 가격이 인하될 수 있는 것이다.

둘째는 탄화규소 전력 반도체를 사용하면 전체 시스템의 부피나 무게를 줄일 수 있다. 냉각장치를 줄이거나 없앨 수 있는 점이 대표적이다. 되로 주고 말로 받는 셈이다.

셋째는, 역시나 따라올 수 없는 우수한 특성이다. 이는 에너지 효율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어느 수준 이상의 효율을 발휘하는 전력 시스템에 탄화규소가 반드시 필요한 이유다.”

Q.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드린다.

“현재 탄화규소는 실리콘보다 몇 배 비싸다. 가격차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줄어들겠지만 저렴한 가격이 우선인 저가 전기전자 제품에는 향후에도 사용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프리미엄급 효율이 필요한 전기자동차 같은 시스템에서는 절대적으로 선호될 수밖에 없다. 효율이 높으면 투자회수 기간이 짧아지는 신재생 에너지 산업에서도 탄화규소가 유망하다. 에너지 효율 기준은 시간이 지날수록 규제의 벽이 높아진다. 그런 점에서 ‘고효율’을 확실하게 보장하는 탄화규소 반도체의 미래는 무척 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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