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장 노트] 미네르바의 부엉이와 반도체
  • 2022-09-30
  • 신윤오 기자, yoshin@elec4.co.kr

중국의 역습

중국 파운드리 기업 SMIC가 지난 7월, 캐나다의 한 기업에 7나노 기반의 암호화폐 채굴 반도체를 출하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반도체 업계가 발칵 뒤집혔다. 파운드리 기업 하나가 반도체 업체에 제품을 공급한 일이 무슨 대수라고 업계는 물론 국제 정세까지 요동쳤을까. 이는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노골적으로 나서고 있는 노광장비 등 반도체 핵심 물자의 대중국 수출 규제가 뚫렸을 가능성 때문이다.

SMIC가 공급한 7나노급 SoC는 암호화폐 비트코인 채굴용이라는 특성상 뛰어난 성능을 가진 칩은 아니다. 하지만 반도체 전문가들은 칩의 퍼포먼스를 떠나 SMIC가 미국의 EUV 노광장비 관련 수출 규제에도 불구하고 7나노 반도체를 양산했다는 점에 주목한다. SMIC가 7나노 칩을 양산했다는 것은 10나노 이하 공정에 필수적인 EUV 노광장비 공정기술을 우회해 다른 공정 기술을 사용했다는 얘기가 된다.
 

미국 기술 분석회사 테크인사이트는 SMIC의 기술이 TSMC의 7나노 공정기술과 유사하다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 TSMC가 공들여 개발했던 최신 세대의 DUV 리소그래피 기반 핀펫 기술을 (어떻게든) 확보해 7나노 반도체 생산에 성공했다는 추정이다. TSMC의 ArFi DUV(액침불화아르곤 심자외선 기반 노광 공정) 공정은 EUV 이전 세대 리소그래피로 수율높은 멀티패터닝 기술로 주목받았다. 

이번 7나노 반도체 공급이 이슈가 된 원인은 미국의 대중국 수출규제가 중국의 반도체 기술 경쟁력을 키워주는 역효과를 가져온 게 아니냐는 이유 때문이다. 아직 속단하기 이르지만 미국의 압력 속에서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기술 격차를 줄여나가고 있는 중국 반도체 산업을 주목하는 까닭이다.

부엉이의 지혜

한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이번에 SMIC가 7나노 반도체를 공급한 회사의 이름이 미네르바(MinerVa)사라는 점이다. 그래서 칩의 이름도 ‘MINERVA7’이다. 이 업체가 회사 이름과 제품 이름을 왜 그렇게 지었는지 정확하게 모르겠으나, 통상적으로 미네르바(Minerva)는 로마 신화 속 ‘지혜의 여신’을 지칭한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전쟁의 신, 아테나와 동일시한다. 여러 가지 상징적인 의미가 있지만 미네르바와 아테나는 '지혜와 전쟁'을 표상하는 게 일반적이다.

미국과 중국의 헤게모니 싸움의 와중에서, 중국 파운드리 기업이 보란 듯이 개발한 첨단 반도체 제품의 이름이 ‘지혜와 전쟁’을 상징한다는 것 또한 아이러니한 상황이 아닐 수없다. 지금 미국과 중국은 온갖 지혜와 전략을 동원해서 막으면 뚫고, 뚫으면 또 장벽을 치려는 치열한 무역 전쟁을 벌이고 있으니 말이다.

문제는 이 소리없는 전쟁 상황에서 우리는 또 어떤 지혜를 발휘해야 생존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거시경제 성장 둔화와 인플레이션으로 반도체 산업 수익성은 약화되고 성장세 감소도 우려된다. 여기에 한국은 반도체 인력난도 겪고 있다. 2023년까지 국내 반도체 업계 최소 5,565명의 석박사 인력이 필요하다는 전망이 나왔지만 전문 인력은 붕어빵 찍듯 나올 수 있는 게 아니다. 어떤 지혜를 짜내야할지 고민하기 앞서 지혜를 내놓을 전문인력조차 부족한 현실에 직면하고 있다.

미네르바와 항상 함께 다니는 부엉이를 서양에서는 지혜의 상징으로 봤다. 미국과 중국의 반도체 전쟁에서 뜬금없이 미네르바가 등장했지만, 정작 미네르바의 부엉이가 필요한 것은 우리 반도체 산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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