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벌레를 가만히 들여다본 사람은 알 것이다. 그 딱딱해 보이는 원형의 등껍질 같은 것이 순식간에 펼쳐지면서 날아가는 모습을 말이다. 무당벌레는 복잡하게 접혀있는 날개를 0.1초 이내에 빠르게 펼 수 있고 100Hz의 매우 빠른 날갯짓에서도 날개가 꺾이지 않는다.
그 비밀은 시맥(翅脈)에 있다. 시맥은 곤충의 앞날개와 뒷날개의 표면에서 볼 수 있는 분기한 세관 계통을 말하는데, 무당벌레의 시맥은 단면 형상이 독특하고 또 탄성을 활용하기 때문에 빠르게 펴면서도 고속의 날개짓도 가능하다.
무당벌레와 이를 모방한 전개형 날개(출처 서울대학교)
서울대 조규진 교수팀(국방생체모방 자율로봇특화센터)은 이 원리를 모사하여 종이접기 기반 구조와 이를 활용한 점핑 글라이딩이 가능한 복합거동로봇을 개발했다. 이 전개형 날개는 전체 면적의 1/8의 면적에 접힐 수 있고 원할 때 빠르게 펼칠 수 있다. 이를 잘 활용하면 소형탐사로봇, 의료 로봇, 항공 우주기술 등에 쓸 수 있다.
일반적으로 생체모방(Biomimetics)은 자연에서 볼 수 있는 디자인적 요소들이나 생물체의 특성들의 연구 및 모방을 통해 인류의 과제를 해결하는 목적을 가진다. 이에 ‘생체모사’라고 부르거나, 지구상의 모든 자연으로부터 아이디어를 얻고자 한다는 넓은 의미에서 ‘자연모사’라는 말로도 쓴다. 불결하다고 쫓기에 바쁜 파리를 본 따 초소형 비행로봇 ‘파리 로봇’을 만든다거나, 제자리 날갯짓까지 하는 ‘벌새’의 비행을 따라한 '벌새로봇’을 만든 사례도 있다. 뱀을 모방한 뱀 로봇은 재난 현장에서 인명 구조용으로 활용될 수 있다.
국립생태원이 한국기계연구원과 함께 특허를 출원한 바 있는 ‘확공형 드릴’ 기술도 이에 연장선상에 있다. 이 드릴은 ‘도토리거위벌레’ 큰 턱의 움직임을 따라해 들어가는 입구는 작으면서도 내부 공간은 넓게 파낼 수 있다. 도토리에 구멍을 뚫고 속에 알을 낳는 도토리거위벌레의 특이한 턱의 구조 생태를 모방한 결과이다.
곤충이나 동물의 생태를 모방하여 실생활에 활용한 기술이 있는가 하면, 인간의 두뇌를 모사한 차세대 컴퓨팅 기술도 있다. 뉴로모픽 칩(neuromorphic chip)은 사람의 뇌신경을 모방한 차세대 반도체로 딥러닝 등 인공지능 기능을 구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갈수록 주목받고 있다. 더욱이 뉴로모픽 칩은 기존 반도체와 비교해 전력 소모량이 굉장히 적기 때문에 인공지능 시대의 에지 컴퓨팅에도 적합한 반도체로 불린다.
인간의 뇌를 모사하라
필자가 뉴로모픽 취재를 위해 만난 서울대학교의 전동석 교수는 “사람의 뇌에 있는 뉴런과 이 뉴런을 연결하는 시냅스 사이에 어떤 전기펄스 신호들이 오가는데, 이것을 그대로 모사하면 굉장히 낮은 전력을 소모하는 컴퓨터를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시 말해, 두뇌가 하고있는 일을 컴퓨터로, 또는 반도체로 만들 수만 있다면 굉장히 높은 효율성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역시 뉴로모픽 관련 인터뷰를 진행한 KIST의 박종길 박사도 “인간의 뇌는 희소성(Sparsity)을 가지는 정보를 가지고도 연산의 효율이 매우 높고 고차원적인 인지, 판단 능력을 수행할 수 있다. 이러한 연산의 형태를 가깝게 모사하고자 하는 것이 뉴로모픽 공학이고 이를 실제로 하드웨어로 구현하는 것이 뉴로모픽 반도체 설계 분야”라고 소개했다. 서울대와 KIST 모두 실제 뉴로모픽 칩을 개발하기도 했다.
이처럼 인간은 동식물을 포함한 모든 자연에서 그 힌트를 얻어 새로운 기술을 만들어내고 있다. 더 나아가, 심지어는 모사하는 대상을 인간 자신의 ‘뇌’에까지 확대하고 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따지고 보면 인공지능도 인간의 지능을 ‘모사’하여 컴퓨터로 구현하는 기술이 아니겠는가. ‘자연에서 배운다’는 말이 유난히 더 과학적으로 들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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