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장 노트] 새해에 떠올리는 고흐의 별과 라이더의 별
  • 2021-01-05
  • 신윤오 기자, yoshin@elec4.co.kr

한 남자가 병원의 창살 너머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느 밤은 별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을 테고, 또 어떤 날은 달빛이 유난히 밝았을 테다. 구름이 많이 껴서 별도 달도 보이지 않는 날에도 사내의 시선은 늘 밤하늘을 향했다.

그게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가 밤하늘의 별을 보고 있는 것인지 지나간 시간의 슬픔을 그곳에 투영하고 있었는지도.

빈센트 반 고흐의 명작 ‘별이 빛나는 밤’은 프랑스 남부 생 레미의 정신요양원에 입원한지(1889년) 약 한달 만에 그린 그림이다. 말이 요양원이지 정신병원과 같았던 곳에 들어오기까지 그는 많은 시련을 겪었다. 본래 깊은 신앙심으로 목회자가 되려했으나 매 번 실패했으며 그림으로도 인정받지 못했다. 실연하고 실직하는 아픔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영원한 후원자였던 동생 테오도 그를 견디지 못했고 아를에서 함께 살던 고갱과 틀어진 후에는 귀를 자르는 기행도 저질렀다.
 

고흐는 생 레미 시절 1년 동안 150여점 회화를 그려냈다. 이 시기에 나온 ‘별이 빛나는 밤’ 작품은 그의 대표작이자 현재 대중에게 가장 ‘강렬한’ 인상을 주는 그림으로 남아 있다. 그런데 이 작품은 과학 분야에서도 주목을 받은 사연을 간직하고 있다. 하버드대학교 천체물리학과 찰스 휘트니 교수가 1987년에 발표한 논문에서 ‘별이 빛나는 밤’에 대해 분석한 주제 때문이다.

연구팀은 그림이 그려진 날로 추정되는 1889년 6월 16일,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 지방의 동쪽하늘의 별자리를 시뮬레이션했다, 그 결과 작품 속의 달과 11개의 별의 위치가 대략적으로 일치했으며, 특히 작품 중앙에서 약간 왼쪽에 그려진 사이프러스 나무 오른편에 위치한 유독 희고 큰 별이 금성이라고 밝혀냈다. 뿐만 아니다. 그림 중앙에 크게 나타나는 회오리 모양도 비밀이 숨겨져 있다. 후에 러시아의 수학자 안드레이 콜모고로프는 대기에서 난류가 흐를 때 큰 소용돌이가 치며 흐른다는 사실을 방정식으로 정립했다. 2004년 허블망원경은 별 주위로 구름과 가스가 소용돌이치는 모습을 처음 포착하였다.

「반 고흐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알아야 할 32가지」의 저자 최연욱씨는 책에서, “최첨단 망원경과 디지털 장비로 확인 가능한 것을 고흐는 어떻게 알았을까. 심지어, ‘별이 빛나는 밤’은 정신요양원에서 밤에 바라본 것을 기억했다가 낮에 그린 작품“이라고 놀라움을 숨기지 않았다.

이처럼 19세기말의 화가가 그토록 간절히 표현했던 ‘별’이 21세기 청년들의 스마트폰에 떴다. 하지만 스마트폰에 뜬 ‘별’은 사람의 생계를 저울질하는 잣대로써의 별이다. 플랫폼 노동자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현대의 청년들과 파트타임 가장들은 철저히 인공지능 알고리즘 따라 일을 배정받고 그 평가로 별(점)을 받는다.

‘고객’님의 후기에 따라 별점의 수가 달라지는데 별점이 줄면 배당되는 일도 줄어든다. 별점에 따라 일할 기회도 수입도 달라진다는 말이다. 별점이 낮으면 배달 라이더들에게 떨어지는 콜의 양과 질도 차이가 생긴다. 그들에게 별은 곧 스트레스의 다른 이름이다. 스트레스를 덜 받으려면 더 많은 별점을 얻어야 하니 그들의 전쟁은 ‘별들의 전쟁’인 셈이다. 라이더들이 법정 최저임금을 벌려면 한 시간에 3건은 배달해야 하며 이는 숙련된 라이더들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라고 한다. 그렇게라도 별을 따기 위해 그들은 쫓기고 허덕이며 길에서 쓰러진다.

과거에 ‘별이 다섯 개’라고 투박하게 외치며 화제가 되었던 한 침대 광고가 있었다. 상위 등급에 해당하는 오성(五星)급 호텔이나 레스토랑을 따라한 것 인지는 모르겠지만 대우나 위상의 정도를 별의 개수로 평가하는 것은 여전한 것 같다. 화가의 별과 라이더들의 별과 호텔의 별이 다르지 않을 테지만 그 동경의 의미는 저마다 다르다는 것이 씁쓸한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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