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장 노트] 인간과 전염병, ‘하물며’ 식물도 싸우는데...
  • 2020-04-03
  • 신윤오 기자, yoshin@elec4.co.kr

왕관(코로나19)의 무게는 생각보다 훨씬 무거웠고, 위력도 상상 그 이상이었다.

지나고 나면 알아서 내려올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좀처럼 멈출 줄 모르는 폭군의 왕관이었다. 보이지 않는 적과 맞서 지구촌 곳곳에서 신음하고 있는 인류는 전시(戰時)에 준하는 방어태세를 구축하느라 우왕좌왕하고 있다. 새로운 전염병이 무서운 것은 사람들에게 강요한 2미터 간격의 사회적 거리가 아니라 갈수록 심해지는 불신의 거리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봄은 어김없이 다시 찾아왔고, 상춘객이 없어도 꽃은 잘만 핀다. 현대 인간의 문명은 희망 없는 '황무지'와 같다하여 T.S. 엘리엇이 ‘4월은 잔인한 달이라 했다’지만, 때가 되면 봄은 노란 개나리를 토해내고 하얀 벚꽃으로 한껏 부풀어 오른다. 그렇다면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 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으며 봄비로 잠든 뿌리를 깨우는(황무지 中)” 일이 식물에게는 어떻게 가능할까. 

봄이면 어디에서나 환하게 핀 봄꽃을 볼 수 있다.(조팝나무 촬영)

전염병과 싸우는 인간의 투쟁이, 죽은 땅에서 생명을 피어 내는 식물의 투쟁과 무관해 보이지 않았기에 ‘싸우는 식물(이나가키 히데히로)’ 책을 다시 펼쳐보아야 했다. 

식물은 뿌리에서 다양한 화학물질을 방출하여 싸운다. 주변의 식물에 피해를 주거나 다른 식물의 발아를 방해하며 다른 식물을 격퇴해야 자신이 살 수 있기 때문이다. 호두나무나 적송 아래에는 덤불이나 다른 나무가 나지 않는다. 호두와 소나무의 뿌리에서 나오는 물질이 다른 식물의 성장을 막는다. 그렇다고 일방적인 싸움이 아니다. 어떤 주위 식물은 그것을 방어하는 구조로 무장해 피해를 막는다. 공방의 균형이 잡히는 것이다. 

잡초는 척박한 환경에서 싸운다. 사람들에게 밟히면서도 잡초는 잘 자란다고 말하지만 잡초는 밟혀야 자란다. 가령 사람의 발에 밟혀 씨를 퍼뜨려야 더 번성하기 때문이다. 길가의 질경이와 별꽃은 지나가는 사람이 밟아주길 원한다. 밭에 있는 잡초는 풀베기나 밭 경작으로 갈기갈기 찢어져도 뿔뿔이 흩어진 줄기와 뿌리줄기 마디에서 뿌리를 내서 재생한다. 역경이 오히려 순조로운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식물은 매일 병원균과 싸운다. 모든 식물은 항균물질로 자신을 지킨다. 귤껍질에 들어있는 리모넨이라는 정유 성분은 귤의 과육과 씨를 지키는 항균물질이다. 찻잎 속에 함유된 카테킨도 원래는 병충해로부터 자신을 지키려고 만들어졌다. 채소에서 나는 알싸하고 쓴 맛은 원래 병원균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려는 물질이다. 또한 병원균의 존재를 감지한 식물세포는 즉시 활성산소를 대량으로 발생시켜 병원균을 공격한다. 어쩔 수 없이 병원균의 침범을 받은 식물세포는 스스로 사멸한다. 적과 함께 자폭하는 방법이다. 때로 식물은 적과 공생하기도 한다. 교묘하게 병원균을 회유하여 양쪽 다 이득을 얻는 방식으로 공생을 도모한다. 

식물은 가장 무서운 적 곤충과도 싸운다. 식물의 무기는 ‘독’이다. 원래 박하 같은 허브향은 곤충을 격퇴하려는 물질이다. 담배성분인 니코틴도 식물이 해충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독’물질이다. 고추냉이의 화학무기(시니그린)는 곤충이 갉아 먹으면서 화학반응을 일으킨다. 고추냉이를 곱게 갈수록 매운 것은 이 때문이다. 양파의 화학무기(알리신)도 이와 같은 원리다. 건들면 다친다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다.

평화로워 보이는 식물, 매일 매일이 전쟁인데

식물은 거대한 적, 동물과도 싸운다. 어떻게 싸운단 말인가. 엄청난 크기의 공룡시대에 식물도 자신의 크기를 거대화하면서 생존했다. 빅 vs 빅, 전략으로 맞선 것이다. 또한 공룡은 속씨식물을 소화하는 효소가 없어 그것을 섭취한 공룡에게 소화불량을 일으켰다. 포유동물에게 쓴맛으로 유독성분을 인식하는 기능이 진화하자, 식물도 쓴 맛으로 인식되기 쉬운 물질 만들면서 진화했다. 

마지막으로 식물은 최대의 난적, 인간과 싸운다. 물론 식물이 인간을 이기거나 인간이 식물을 이길 수는 없을 것이다. 인류는 자기 좋을 대로 식물을 개조해왔다. 자신이 필요한대로 식물을 재배했다. 일방적으로 이용하는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다. 인간이 알아서 씨를 전 세계로 퍼뜨려주었기 때문이다. 이보다 이익을 주는 싸움이 또 있을까.       

이처럼 평화로워 보이는 식물도 사실 매일 매일 치열한 싸움 속에서 산다. 투쟁하고 때로는 공존하며 식물은 생존한다. 하물며, 이렇게 식물도 싸우는데, 싸워 이겨 봄에 그 찬란한 꽃을 피워내는데... 인간이 벌이는 전염병과의 싸움의 결말도 이와 다르진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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