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새를 '맡는' 핵심은 후각 신경세포의 맨 끝에 존재하는 후각수용체
아카데미를 평정한 영화 [기생충]의 핵심 키워드 중의 하나는 ‘냄새’이다.
소위 말하는 빈부 간의 ‘선’을 넘은 냄새가 서로를 자극하고, 구분하여, 정체성을 부여한다. 봉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은 다니는 곳이 달라 동선이 겹치지 않지만 영화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처럼 가정부나 운전기사와 같은 직업은 예외, 라고 말한 바 있다. 그는 이들이 놓인 같은 공간의 냄새를 이렇게 읽어냈다.
“냄새는 사람들 간에 굉장히 사적인 영역중 하나다. 냄새는 그 사람의 현실과 처지를 보여준다. 서로의 냄새는 대해서는 예의상 잘 얘기하지 않는데, (영화는) 그 인간에 대한 예의가 붕괴되는 순간에 대해서 다룬다.”
선을 넘지 않으려고 해도, 냄새는 개의치 않고 선을 넘나든다. (이미지: 네이버 영화 <기생충>소개에서)
영화에서 부유층을 상징하는 박사장(이선균 역)은 그 냄새에 대해 아내에게 푸념을 늘어놓는다. 썩은 무말랭이 냄새? 행주 빠는 냄새? 지하철 타다 보면 나는 냄새가 있다,고 말이다. 영화는 결국 그 냄새가 촉발한 적대감이 보이지 않은 ‘선’을 붕괴하는 모습을 희극처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들을 이렇게 극단적으로 몰고 간 ‘냄새’는 그 정체가 과연 무엇일까. 과학은 냄새를 무엇이라고 규정할까.
흔히 화학물질 차원에서 이해하고 있는 기본적인 냄새의 구조는 비교적 최근에 밝혀졌다. 코의 비강 천정에 후각 상피조직이 있는데 여기에 후각 신경세포들이 나열해 있다. 중요한 것은 이 후각 신경세포의 맨 끝에 존재하는 후각수용체이다. 이들이 코 속으로 들어 온 냄새 분자와 ‘결합’해 발생한 전기 신호가 신경을 타고 뇌로 전달하면 인간이 냄새를 ‘맡는다’고 느낀다. 냄새 분자라는 화학분자와 사람의 코에 존재하는 400종류의 후각수용체가 결합하는 조합 패턴이 바로 냄새라는 놈의 정체이다. 2004년에 이 후각 매커니즘을 분자 차원에서 이해한 공로로 2명(리처드 액셀, 린다 벅)의 과학자가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후각을 잃은 인간과 후각이 생명인 곤충과 동물
주목할 점은 우리 몸의 400개에 이르는 후각수용체가 코 속에만 있는 게 아니라 온몸에 퍼져 있다는 사실이다. 장기는 물론 심지어 정자에도 있어 난자를 찾아갈 때도 아마 냄새를 맡고 가는 게 아닌지 추측(박태현, 화학의 미스터리中에서)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후각 수용체가 코 속 뿐만 아니라 몸 전체에서 굉장히 중요한 기능을 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 때문에 인간은 아주 낮은 농도(0.01ppt)의 냄새까지 맡을 수 있지만 인간의 후각은 문명화된 사회에서 점점 퇴화하고 있다. 냄새로 먹이를 찾고 종족 번식도 하는 야생 동물은 후각 없이는 하루라도 살 수 없지만 인간은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수컷 누에나방은 암컷이 풍기는 성 페로몬을 잘 발달된 더듬이로 감지한다. 꿀벌은 위험을 감지하는 경보 냄새(페로몬)를 만드는 분비샘을 가지고 있으며, 개미도 경보와 결집을 위해 페로몬을 발산하여 동료들에게 알린다. 여우 원숭이는 자신들의 영역을 표시하기 위해 영역 페르몬을 내는데 냄새를 풍기기 위해 냄새를 만드는 분비샘이 있는 꼬리를 흔들어댄다. 곤충이나 동물들은 생존을 위해 이러한 복잡한 페르몬 구조를 가진 화학 언어를 구사한다.
그러고 보면, 영화 기생충의 냄새와 과학의 냄새는 다르면서도 같은 냄새일지도 모르겠다. 영화에서의 냄새는 가난한 자의 생활 환경(반지하)에서 비롯됐지만 누구나 알듯 그것은 핑계이다. 자신의 영역을 넘어오는 것 자체를 꺼려하는 부자의 경계심(또는 무관심)과 결합하여 계층 구분이라는 새로운 조합 패턴을 만든 결과가, 그들이 말하는 냄새의 정체이다.
재미있는 것은 냄새를 맡다보면 독한 냄새라도 웬만하면 적응이 된다는 사실이다. 앞서 말했듯이 후각 수용체랑 결합한 냄새 분자가 신경 세포를 타고 뇌로 전달되는 과정에서 같은 냄새가 또 자극해도 뇌는 느끼질 못한다. 냄새가 없어서가 아니라 뇌가 거기에 적응한 탓이다.
봉 감독의 말마따나, 인간에 대한 예의를 붕괴하는 냄새의 정체를 알면서 우리가 알아채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 자신도 모르게 그 음흉한 냄새에 적응해 있기 때문이 아닐지 모르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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