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나 홀로 집에, 라는 영화가 성탄절 특선 영화의 단골로 자리잡기 전에는 단언컨대 영화 벤허가 크리스마스 특집의 터줏대감이었다. 예수를 전면에 내세운 노골적인 종교영화는 아니었지만 유대 청년 벤허(찰턴 헤스턴 役)의 삶은 더욱 종교적인 성스러움을 전해준다. 당시 영화 속 그의 모습은 훈남과 히어로 그 자체였다. 이 핸섬가이는 로마의 총독으로 부임한 옛 친구(멧살라)의 질투와 증오로 하루아침에 예루살렘의 부호에서 고대 갤리선의 노예로 전락한다. 오직 인간의 노젓기 힘에 의지하는 돛배, 갤리선 노잡이 벤허의 죄수번호는 41번이었다.
41번 노예를 유심히 지켜 본 로마의 집정관 아리우스는 묻는다. “41번, 넌 얼마 동안 일했나?” “이 배에서 하루만 더 있으면 한 달입니다.” “날짜를 정확히 세고 있군. 그 전엔?” “다른 배에서 3년 있었습니다.” (집정관은 갑자기 벤허의 등을 채찍으로 후려친다. 마치 이 말을 하고 싶었다는 듯) “너는 반격하려는 기개를 가졌고 그걸 참아내는 인내심도 가졌군. 네 눈은 증오가 가득해. 41번” 그렇잖아도 힘들어 죽을 지경인데 매질까지 당하고 증오의 레이저를 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냐마는, 아무튼 이 눈빛 하나 때문인지 ‘41번 노예’는 집정관의 양아들로 들어가 반전을 만들어낸다.
영화 레미제라블 [출처: 네이버 영화]
24601
배고픈 조카를 위해 빵 하나 훔쳤다고 징역 5년을 선고받고, 거기에 탈옥을 시도했다고 14년이 더해져 무려 19년을 옥살이한다. 프랑스의 문호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 주인공 장발장의 이야기다. 이 작품의 제목처럼 미천하고 불쌍한 사람, 장발장의 죄수번호는 24601. 이 불행한 사내 이야기는 뮤지컬로도 많이 만들어졌지만, 국내에서는 600만 명에 가까운 관객을 끌어 모은 영화 레 미제라블(2012)도 유명하다.
영화에서 ‘죄수 24601’는 큰 배를 도크 안으로 넣기 위해 수많은 죄수와 함께 노역한다. 겨우 일을 끝내고 방으로 돌아가려는 축 처진 24601번을 자베르 경관은 불러 세운다. 땅에 떨어진 깃발 달린 무거운 기둥을 이고 오라는 것이다. 이윽고 자베르(러셀크로우 役)는 그 투박한 목소리로 (무려 뮤지컬풍) 노래 부른다. “수감 번호 24601, 넌 가석방되었다. 그게 무슨 뜻이냐면은...” “그건 내가 자유란 뜻이지” “아니, 이 가석방 증표는 수치스러운 것이다. 넌 영원히 그걸 확인하게 될것이다. 넌 위험 인물이야... 안 그래 24601?” “내 이름은 장발장이오” “난 자베르다. 내 이름을 잊지 마라 24601”
11 그리고 5
차량공유 서비스 ‘타다’와 택시 업계 간의 갈등은 2014년 10월 공포된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의 해석에서 비롯됐다. 타다 측은 ‘11인승 이상, 15인승 이하’ 승합자동차를 임차하는 사람에게는 운전자를 알선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에 법(시행령 제18조)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택시 업계 입장은 다르다. 타다 측이 같은 법 제4조에 따른 국토교통부장관의 면허를 받지 않아 불법 택시이며, 유상운송을 금지한 34조도 어겼다고 주장한다. 지금 타다의 ‘11’인승이상 승합자동차는, 분신 자살과 같은 결사 투쟁으로 맞서고 있는 택시 기사들에게 증오의 숫자 취급을 받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세계 무선통신 No.1 중국 기업 화웨이에 전쟁(?)을 선포한 것은 표면적으로 사이버 보안이다. 5G 통신 장비에 백도어를 설치하면 언제든 국가기밀이라도 빼낼수 있다는 것. 틀린 말은 아니다. 5G 기술은 빅데이터와 결합해 모든 산업을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진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만은 아닐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의 주도권 싸움부터 미중 패권주의까지 복잡한 계산이 깔려있다. 이 탓에 첨단 기술의 선봉 ‘5(G)’가 졸지에 분쟁의 상징이 되었다.
41번 노예는 예수에게 얻어 마신 물 한바가지를 되돌려줌으로써 자신 또한 또 한명의 예수가 되었고, 24601번 죄수는 평생 자신의 과거를 속죄하며 성인(聖人)으로 거듭난다. 11인승 차량공유 서비스 사태도 택시면허권 매입과 월급제 등의 해법이 논의되고 있다. 5G로 촉발된 신 무역전쟁에서도 ‘첫 상용화’ 국가의 면모를 이어갈 현명한 외교 정책이 필요하게 되었다. 죄인의 숫자가 영원하지 않듯 불행의 숫자도 행운의 숫자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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