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보면, 식물이야말로 온통 센서(Sensor) 덩어리다.
사실이냐고. 그렇다(고 감히 말한다). 기술과 전혀 관계없을 것 같은 식물은 자기 몸 곳곳에 센서를 달고서 보고, 냄새 맡고, 느끼고, 듣고, 균형을 잡는다.
우선 식물은 볼 수 있다. 식물은 땅에 뿌리를 박고 햇빛을 받아 사는 생명체이기에 빛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빛의 방향, 양, 길이, 색 등을 알아야한다는 얘기다. 그러기 위해서 식물은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전자기 파장을 감지한다. 식물은 빛의 신호를 그림으로 바꾸는 신경 체계가 없지만, 빛 신호를 성장에 필요한 다른 신호로 바꿀 수 있다. 이러한 시각 신호를 생리적으로 인지 가능한 명령으로 바꾼다. 일찍이 다윈 선생께서는 식물이 줄기 끝으로 빛을 본다고 실험해 증명했다. 빛을 신호로 바꾼다는 의미에서 식물은 시각 센서를 가진 셈이다.
식물은 냄새를 맡는다. 정말이다. 식물은 동물과 마찬가지로 공기 중의 휘발성 성분을 감지한다. 이것이 식물의 후각이다(고 치자). 식물은 공기 중의 휘발성 화학물질을 감지하고, 비록 신경은 없지만 이 신호를 생리적 반응으로 전환한다는 점에서 후각 센서가 있다 하겠다.
식물이 후각신경 없이도 냄새를 맡을 수 있다면 촉각신경이 없이도 느낄 수 있다는 가설이 가능하다. 그렇다. 식물도 감각을 느낀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식물학자들이 실험을 했단다. 토마토 잎에 뜨거운 강철을 댔더니 같은 줄기의 다른 잎에서 전기적 신호를 감지했다는 것. 토마토는 뜨거운 감각(?)을 느끼고 다른 잎들에게 잠재적으로 위험한 환경을 경고했다. 일종의 감각 센서와 알람 센서가 존재하는 것이다.
식물도 인간처럼 소리를 듣는다. 뻥이 아니다. 부지런한 식물학자들이 실험을 통해 밝혀냈다. 꿀벌은 실제로 날개짓을 하지 않고도 빠른 날개 근육에서 오는 진동으로 고빈도 진동을 생성하고 꽃이 여기에 반응한다. 가뭄기간 동안 소나무와 오크나무에서 초음파 진동이 나온다는 보고도 있다. 이 초음파 진동이 다른 나무들에게 가뭄을 대비하라는 신호로 읽힐 수 있다. 음향 센서를 장착하고 있는 셈이다.
식물은 균형을 잡을 수도 있다. 오직 태양쪽으로만 기운다면 식물은 균형을 잃고 쓰러지고 말 것이다. 하지만 중력에 반응하여 위로도 자란다. 식물에 균형을 잡는 센서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더 자세히 알고 싶은 충동에 휩싸이거든 대니얼 샤모비츠의 명저 ‘식물은 알고 있다‘를 사서 읽으면 된다. 그의 책에는 이러한 식물의 감각 기능을 센서라고 표현하지 않았지만, 센서의 정의가 열, 빛, 온도, 압력, 소리 등의 물리적인 양이나 그 변화를 감지하거나 구분 및 계측하여 일정한 신호로 알려주는 부품이나 기구라고 했을 때, 식물의 그것을 센서라고 해도 무방하겠다.
식물 이야기에 센서를 엮은 이유는 하나다. 최근에 다녀온 센서학술대회 때문이다. 올해는 기업들 참여도 많이 늘었단다. 개회식에 국회의원까지 나서 센서의 중요성을 역설하기도 했다. 그럴 것이 센서는 이제 ‘작은 거인’이 됐다. IoT다, 4차 산업혁명이다 하면서 제대로 대접(?)받고 있다. 정부도 가만있지 않았다. 재작년부터 첨단 센서를 육성한다면서 수천억 원을 쏟아붓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학회 토론회에 나선 일선 센서 기업들의 대표들은 다른 소리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한국 센서 산업이 여전히 인프라가 열악하고 기초 기술이 부족하다고 호소한다. 까고 보면 센서칩의 대부분이 수입이라는 현실에서도 빈말은 아닌 것 같다. 신산업의 총아, 정부의 중점 육성산업인 센서 산업이 처한 현실은 녹록치 않은 것 같다. 센서 기업인들은 말한다. 기초 기술에 투자하고, 고부가가치 제품을 만들 수 있도록 팹 서비스가 확대되어야 하며 인증이나 표준화에도 정책적으로 힘써야한다고 주문했다.
결국, 식물이 자체 센서 기능을 발전시킨 까닭은 전부 생존을 위한 일이었다. 종이 살아남기 위해 자기들도 동물과 다른 방식으로 보고, 듣고, 냄새 맡으며 살아남았다. 센서 하나를 가지고 거친 기업 환경에서 버틴 기업인들의 노력도 거기에 못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목소리를 허투로 듣지 말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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