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에 이어 애플이 국내기업의 FPCB를 사용할 것이라는 전망에 힘입어, 2014년 이후 침체됐던 국내 PCB 시장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보인다.
전자산업 경기의 선행지표격인 PCB 경기가 좋아지면 전자산업도 호전된다는 것이 업계 정설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PCB 시장은 2013년 이후 그리 좋지 않았다. 서치앤마켓(Research and Markets)은 ‘2015~2020 세계 PCB 산업 보고서’를 통해 2015년 세계 PCB 시장이 2014년보다 4.4% 감소한 570억 달러 규모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시장 감소의 주원인은 달러 대비 엔화 및 유로화, NTD(대만 화폐 단위)의 가치하락, 스마트폰 시장의 정체, PC 시장의 지속적인 하락, 태블릿 PC의 급락 등에 있다.
전방 시장의 수요 부진은 2016년 한 해도 지속됐다. 서치앤마켓은 현재까지의 추이와 앞으로의 전망을 토대로 2016년 PCB 시장이 2015년 대비 3% 감소한 553억 달러의 시장 규모를 형성할 것으로 예측했다. 또한 지금까지 PCB 시장을 주도해온 스마트폰 시장을 계승할 새로운 시장이 2020년까지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PCB 전체 시장에 대한 부정적인 전망 가운데 자동차 분야만큼은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자동차 PCB 시장은 자동차의 전자화에 힘입어 2016년 57억 2,000만 달러(8.3% 증가)에서 2017년에는 61억 9,000만 달러(8.2% 증가)로 성장할 전망이다.
▲ 단면,양면, 다층 FPCB 구조 〈출처: 'Flexible PCB', 전자부품연구원(구 전자정보센터), 2007.09〉
국내 PCB 시장도 전 세계 PCB 시장의 악화와 흐름을 같이했다. 삼성전자 스마트폰 출하량이 급증하던 2012년과 2013년에 대거 설비를 증설했다. 하지만 2014년에 삼성전자 시장 점유율이 하락하면서 가동률은 떨어졌고, 판가 인하 압력은 더욱 커져 결국 실적 악화로 이어졌다. 여기에 주요 고객사였던 애플이 물량을 줄이는 바람에 압박은 가중됐다.
아이패드용 FPCB를 납품하던 국내 기업들은 2014년 애플이 대화면 스마트폰인 아이폰6플러스를 출시하면서 아이패드의 판매 감소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이와는 반대로 일본의 니폰 멕트론(Nippon Mektron)은 동남아시아와 중국에 증설을 추진했으며, 대만 ZDT는 같은 그룹 계열이자 아이폰을 생산하는 훙하이정밀과 시너지를 발휘하며 애플 물량을 수주, 승승장구했다.
▲ FPCB 산업 주요 공급 체인 〈출처: 'FPCB 산업' HMC투자증권, 2014.02.14〉
국내 FPCB 업계, 애플로 숨통 트이나
2016년 하반기에 PCB 시장에 대한 부정적인 전망이 나왔지만, 국내 기업들에게 2017년은 기회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와 애플의 스마트폰에 국내 기업들의 연성회로기판(FPCB: Flexible Printed Circuit Boards)이 대거 채택될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대대적인 매출 증가가 예상되고 있어서다. 더벨(the bell)에 따르면, 인터플렉스와 비에이치(BH)가 2017년 출시 예정인 삼성전자 갤럭시S8 모델 2종에 디스플레이와 터치스크린 패널용 FPCB를 공급할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또한 2017년 출시 예정인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이하 올레드) 아이폰에도 인터플렉스, 비에이치, 삼성전기의 FPCB 채택이 결정되면서, 그 동안 부진했던 PCB 산업의 전망을 밝게 하고 있다. 이들 세기업이 애플에 납품할 제품은 올레드 디스플레이에 사용되는 경연성(RF) PCB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들 세 기업은 FPCB 전문 기업인 동시에 올레드용 제품을 생산해 본 경험도 갖추고 있다. 애플은 2016년 초, 차기 아이폰에 올레드 디스플레이의 적용을 위해 삼성디스플레이와 계약을 체결한 바 있는데, 후속 작업을 위해 지속적으로 FPCB 전문 기업을 찾았다.
단단한 경성(Rigid)과 구부러지는 연성(Flexible) 기판을 결합한 RF PCB는 보통 스마트폰 메인 기판과 연결돼 디스플레이의 원활한 작동을 가능하게 한다. RF PCB는 주로 디스플레이, 터치스크린패널, 카메라 모듈 등에 사용되는데, 이 중에서 디스플레이용 RF PCB가 가장 단가가 높다. 애플이 연간 2억 대의 아이폰을 판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올레드 디스플레이 공급부족으로 한 개 모델에만 우선 적용할 것으로 예상돼 2017년 말까지 최대 7,000만 대의 올레드 아이폰이 생산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 등 기존 고객 물량에 애플 주문이 추가됨에 따라 실적 개선이 예상된다. 지난 2~3년간 수요부진과 공급과잉으로 침체됐던 PCB 시장에 국내 기업들이 반전의 기회를 맞이하게 된 셈이다.
▲ 삼성디스플레이의 플렉시블 디스플레이 〈출처: 삼성디스플레이〉
차량용 FPCB, 열내구성 확보가 중요
PCB는 다수의 전자부품을 표준화된 방식으로 고정 및 연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배선이 패턴화되어 있는 기판을 말한다. 과거에는 PCB 회로를 형성하기 위해 스크린 인쇄법을 활용했지만, 최근에는 감광성 필름이 이를 대체하고 있다.
PCB에서 진보된 FPCB는 원재료의 굴곡성을 활용해 복잡한 제품 내에서 굴곡 상태로 설치하거나 반복적으로 움직이는 부위에 사용된다. FPCB는 그동안 소형화, 경량화, 박형화에 크게 공헌하며 스마트폰과 디지털 카메라의 내부 배선, HDD나 광디스크의 가동부 등에 널리 사용돼 왔다.
FPCB는 1950년대 미국 로저스(Rogers)에서 개발해 군사용 전자기기에 주로 사용돼 왔다. 이후 1960년대 후반 일본의 닛폰 멕트론(Nippon Mektron)으로 기술이 이전되면서 일반 제품에도 적용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 FPCB가 처음 도입된 것은 1980년대 후반이다.
1980년대에는 가정용 VTR이나 자동차 AV(Audio & Video) 등의 가전 기기에 많이 사용됐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본격적으로 VTR 카메라나 CD 플레이어 등의 기기에 탑재되는 한편 HDD, DVD 및 평판 디스플레이 등의 컴퓨터 주변기기 용도가 증가했다. 2000년 이후에는 휴대전화, 디지털 카메라용이 급증했다.
FPCB는 다양한 전자기기에 활용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FPCB는 경성 기판에 비해 얇고 유연성이 뛰어나며 고밀도 배선이 가능하다는 특징으로 인해 스마트폰뿐만 아니라 LED 조명, 차량용 등에서의 활용이 점차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서치앤마켓의 전망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차량용 PCB 시장은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FPCB의 기본 구조는 도체를 1층에만 사용하는 평면판과 도체를 2층으로 사용하는 양면판이 있다. 이들은 도체(구리회로 + 구리도금)를 전기적으로 절연하는 열프레스 접착제를 통해 폴리이미드(Polyimid) 필름을 접합한 구조로, 내열 신뢰성 향상을 위해 접착제의 내열성 확보가 중요한 이슈다.
차량용 FPCB에서의 가장 큰 이슈는 내구성이다. 일반적으로 사용온도가 100℃ 이하인 전자 기기용과는 달리 조명이나 자동차 용도로는 100℃ 이상, 때로는 150℃ 이상의 내구성이 요구된다. 이러한 높은 온도에서 사용가능한 FPCB는 자동차의 전자화와 고성능화로 엔진룸에도 수많은 센서, ECU, 액추에이터 등의 부품이 탑재됨에 따라 얇고 가벼우며 고집적화된 배선이 가능한 제품이 요구된다.
차량용 전선 규격(ISO6722)은 Class A에서 Class H 중에서 내열 규격이 -40℃ ~ 150℃로 규정한 Class D에 해당한다. 내용을 보자면, “규격 온도 환경 하에서 3,000시간 테스트한 후 절연층의 파괴 유무를 확인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FPCB도 이 규격에 준해 150℃, 3,000시간을 방치했을 때의 내구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조건을 만족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FPCB용 접착제가 중요하다. 기존에는 접착력이 우수한 아크릴계 수지와 폴리아미드 수지 등 범용 열가소성 수지에 열경화성 에폭시 수지를 첨가해 분자 간 화학결합을 통해 납땜 시 내열성을 확보한 접착제를 많이 사용했다. 하지만 범용 열가소성 수지의 연속 사용 가능온도는 100℃로, 이는 고온에서 장시간 신뢰성 확보를 어렵게 한다.
이 문제를 고민했던 스미모토전기의 경우, 자체 확보한 내열성 수지의 합성기술을 활용해 고온에서 장기 신뢰성이 우수한 폴리이미드 수지에 특수 열가소성 수지를 공중합 시켜 접착제로 사용하는 것을 검토했다. 스미모토전기는 폴리이미드 수지와 열가소성 수지의 공중합 비율을 최적화한 후 신규 공중합 수지를 합성하고, 공중합 수지 사이에 가교제로 다리를 설치함으로써 독자적인 접착제 개발에 성공했다.
스미모토 전기의 타카유키 요네자와 (Takayuki Yonezawa) 에너지ㆍ전자 재료 연구소 연구원은 “해당 접착기술로 150℃ 조건 내에서 FPCB를 3,000시간까지 가열한 후 밀착력을 테스트한 결과, 기존의 제품에 비해 높은 내열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해당 테스트 후의 밀착력은 일본인쇄회로공업회(JPCA: Japan Printed Circuit Association)의 규격(≥ 3.4N/cm)를 충족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플렉시블 스마트폰, FPCB 활용성 증가 예상
1~2년 내에 플렉시블 스마트폰이 상용화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FPCB의 활용 가치는 더욱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 신생기업인 모시(Moxi)는 세계 최초로 둥글게 말 수 있는 스마트폰을 개발했다. 모시의 플렉시블 스마트폰은 흑백 디스플레이를 장착해 해상도와 사양은 높지 않지만 플렉시블 터치스크린을 사용해 손목시계처럼 사용할 수 있다. 모시의 컬러 디스플레이 버전은 2018년에 출시할 계획이다.
중국 회사인 오포(OPPO) 역시 플레시블 스마트폰을 준비하고 있다. 오포의 플렉시블 스마트폰은 7인치 대화면 디스플레이를 반으로 접을 수 있도록 디자인됐으며, 2016년 8월 시제품 개발에 성공해 현재 상품 출시 시기를 검토하고 있다.
▲ 목시(MOXI)의 플렉시블 스마트폰 예상도
애플은 2016년 6월, 플렉시블 스마트폰에 관련한 디자인 특허를 미국 특허청(USPTO)으로부터 받았다. 애플의 특허는 디스플레이로 감싼 전자 기기에 관한 것으로 폰주위를 올레드 스크린으로 감싼 내용이 포함돼 있다.
플렉시블 스마트폰에 FPCB를 적용할 것으로 전망되는 사례는 삼성전자의 특허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지난 12월 6일, 특허청이 공개한 삼성전자의 ‘플렉시블장치’의 특허 출원(공개번호 10-201600138748) 내용이 바로 그것이다. 삼성전자가 해당 특허를 출원한 배경은 휴대 장치의 기능 다양화에 따라 디스플레이도 박형화, 경량화, 저소비 전력화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발전함에 따라 휘거나 굽히거나 접혀지는 플렉시블 디스플레이의 등장에 기인한다. 즉 사용자에게 확장 및 변화 가능한 디스플레이 영역을 제공해 새로운 사용자 경험(UX)와 사용자 인터페이스(UI)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 삼성전자 '플렉시블 장치' 특허 도면. 좌측부터 제1상태의 플렉시블 장치를 나타내는 정면도, 제1상태의 플렉시블 장치를 나타내는 배면도, 제2상태의 플렉시블 장치를 나타내는 정면도, 제2상태의 플렉시블 장치를 나타내는 배면도, 제2상태의 플렉시블 장치를 나타내는 사시도. 〈출처: 특허청〉
‘플렉시블 장치’의 특허는 접혀지는 디스플레이부, 접혀지는 기능 장치부, 디스플레이부와 장치부를 연결하는 연결체를 포함한다. 이 연결체는 FPCB를 사용해 기계적, 전기적으로 연결한다. 연결체는 전면체와 배면체를 연결하는 제1 연결체, 전면체 배변체의 다른 한쪽 끝을 연결하는 제2 연결체를 포함한다. 또한 전면체와 배면체에는 각종 전자부품이 실장되는 회로 기관이 장착됐는데, 경성 기판은 물론이고 플렉시블 기판의 실장에 대한 가능성도 열어두었다. 즉 회로 기판을 분절형(관절형)으로 구성해 이 분절 기판을 FPCB로 연결한다는 것이다.
▲ 모드 전환 동작을 단계 별로 나타낸 플렉시블 장치를 나타내는 도면으로 제1상태에서 제2상태로의 모드 전환을 보여준다. 〈출처: 특허청〉
보드도 플렉시블해진다
최근 미국에서는 정부와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인간의 피부에 장착할 수 있을 정도로 유연하고 얇은 FPCB의 상용화에 나서고 있다. 2016년 12월 4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국 정부와 실리콘밸리 기업이 개발에 나선 FPCB는 피부 패치 형태의 초박형 회로 기판으로 군인과 조종사의 땀을 분석하고, 기기를 감싸 가스 누출을 탐지하며, 비행기 날개 스트레스 감지 등의 센서 시스템에 적용할 수 있다. 특히 문신처럼 얇아 사람의 피부나 다양한 기기에 얇게 설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한발 더 나아가 칩을 올리는 보드 자체를 플렉시블하게 만드는 FHM(Flexible Hybrid Manufacturing) 기술도 주목받고 있다. 이 기술은 반도체를 플렉시블 보드에 인쇄하는 것으로, 재료와 제조 기술은 확보했으나 새로운 제품에 이 기술을 적용하려는 투자자의 부족으로 아직까지는 보급 속도가 더딘 상태다.
반도체와 전자 기기의 대량생산 제조시설은 이미 오래 전에 실리콘밸리를 떠나 중국이나 다른 생산비용이 저렴한 국가로 이전한 상태다. 하지만 FHM은 미국 내에서 새로운 제품을 통해 빠르게 시장 진입을 꾀하는 기업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자빌 서키트(Jabil Circuit)나 플렉스트로닉스 인터내셔널(Flextronics International)과 같은 기업들은 고객에게 제품을 설계하고 프로토타입을 제작할 수 있도록 미국 내에 시설을 유지하고 있다. FHM이 기존 대비 빠르게 제품 개발과 생산 속도를 향상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미국이 FHM을 활용해 다른 국가와 차별화된 지식재산권(IP)를 확보해 자동차 앞유리, 안테나, 태양광전지, RFID, 컴퓨터 디스플레이 등에서 새롭게 시장을 선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이처럼 FPCB는 다양한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플렉시블 기기의 등장은 물론 향후 자율주행차의 등장으로 FPCB의 가능성은 더욱 확대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 도쿄대학교에서 개발한 피부에 장착할 수 있는 웨어러블용 디스플레이 〈출처: 도쿄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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