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서울에서 열린 바둑대국에 전 세계가 집중했다. 구글 자회사 딥마인드가 개발한 인공지능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국이었다. 알파고는 이 대국에서 1,200여 개의 컴퓨터 CPU(중앙처리장치)로 시간당 56 kW의 전력을 소비하며, 시간당 불과 20 W의 에너지를 소모한 이세돌 9단과 치열한 접전을 벌였다. 만약 인간의 뇌처럼 에너지효율이 뛰어난 인공지능 컴퓨터를 만들어낸다면, 우리는 스마트폰에서도 알파고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스마트폰 등 정보기기 하드웨어는 주기억장치, 중앙처리 장치, 입출력장치 3단계를 거치는 '폰 노이만 구조'에 기반하고 있다. 이는 나열된 명령을 순차적으로 수행하는 직렬식 수학 계산에 적합하다. 반면 인공지능과 같이 고도로 복잡한 작업에는 병렬식 계산이 적합한데, 폰 노이만 구조의 컴퓨터로 이를 실행하려 할 경우 주기억장치와 중앙처리장치가 서로 주고받는 데이터양이 폭증해 작업이 지연되는 폰노이만 병목 현상(von-Neumann bottleneck)이 발생해 효율적인 작업이 불가하다.
때문에 알파고는 폰 노이만 구조 CPU 1,200여 개를 병렬 연결한 컴퓨터에 특별히 설계된 소프트웨어를 적용해 병렬 계산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졌으나, 천여 개의 CPU를 활용하는 만큼 전력소모가 심하다. 만약 인간의 뇌와 같이 작동하는 뉴로모픽(Neuromorphic) 구조의 컴퓨터를 구현할 수 있다면, 하드웨어 자체가 병렬계산에 적합해, 적은 전력으로도 뛰어난 인공지능을 구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러한 상상을 현실화할 차세대 메모리 소자를 IBS 나노구조물리 연구단이 만들어 냈다. 연구진은 그래핀 등 2차원 나노 신소재들로 인간의 뇌 속 시냅스를 모방한 터널링 메모리(TRAM) 반도체 소자를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인간의 뇌 속 시냅스는 2개의 돌기(소자의 전극에 해당)로 신호를 주고받으며, 신호의 잔상을 남겨 기억을 저장한다. 뇌는 이 같은 시냅스 시스템을 바탕으로 적은 에너지로도 고도의 병렬연산을 빠르게 처리할 수 있다.
지금까지 연구돼 온 메모리 소자 중 시냅스와 같이 두 개의 전극으로 구성된 소자는 크게 2가지가 있다. 저항 변화물질을 이용한 저항 메모리(RRAM, Resistive memory)와, 물질의 상변화를 이용한 상변환 메모리(PRAM, Phase change memory)다. 그러나 RRAM과 PRAM은 소자 내 소재 간 특성이 달라 전기적 변화가 심해 신호의 신뢰성이 떨어지고, 누설전류로 인한 전력 손실이 생기는 단점이 있었다.
IBS 연구진은 기존 3개의 전극을 갖는 플래시 메모리 구조에서 저장 전극(Gate)을 없애고, 시냅스처럼 2개의 전극(Drain, Source)으로 신호 전달 및 저장을 동시에 수행하는 TRAM을 구현했다. 새로운 TRAM은 2차원 나노 신물질로 각광받는 그래핀, 육각형 질화붕소(h-BN), 이황화몰리브덴(MoS2)을 쌓아올려 만들어졌다. 입력 전극(Drain)에 전압을 가하면 이황화몰리브덴으로 전자(신호)가 흐른다. 이때 전극(Drain)과 그래핀 간의 전기장 세기의 차이로 일부 전자가 수 나노미터 두께의 얇은 육각형 질화붕소 절연층을 터널링 해 그래핀에 저장된다. 저장된 전자는 전극(Source)과 그래핀 사이에 낮은 전기장 세기 차이로 터널링이 불가해 그래핀에 머문다. 저장된 전자의 양에 따라 이황화몰리브덴의 저항이 변하며 전자의 흐름을 제어해 메모리로 기능한다. 이러한 TRAM 구조는 현재 상용화된 실리콘 메모리에도 곧바로 적용이 가능하다.
이번에 만든 메모리 소자의 모든 소재는 전기적, 기계적 특성이 우수한 2차원 나노물질로, 저항 메모리(RRAM, Resistive memory)?상변환 메모리(PRAM, Phase change memory) 등 기존 2극형 메모리 소자(PRAM, RRAM)의 약점인 낮은 신호 신뢰성을 1000배 높은 신호 정밀도로 극복했다.
또한 고무와 같은 신축성을 확보해, 향후 웨어러블 기기 및 휘어지는 컴퓨터 등에 적용돼 기술적 진보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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