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사부 과학책 읽기’ 코너는 ‘집’에 ‘사’ 놓고 안 읽은 ‘부’담스러운 과학책 읽기’를 줄인 말로 예능 프로그램 이름을 빗대었다. 글의 구성도 무협영화 줄거리처럼 원한→고난→수련→복수, 라는 패턴을 차용하여 과학책을 읽고 정리한다(글쓴이 집사부 붙임)
저자: 브뤼노 망슬리에 / 역자 김아애 / (주)출판사 클
[아름답고 우아한 물리학 방정식]을 읽고
제1장: 원한
우선
, 집사부 필자는 고백합니다
. 수학을 잘 하지는 못했다고
(하는 게
‘못한다
’는 표현보다는
..) 말입니다
. 요새는 이를 전문 용어로
‘수포자
’(수학을 포기한 자
?)라고 부릅니다
. 피부 표면에 생기는
‘수포
’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수학을 못하는 일이 마치 무슨 병에 걸린 것처럼 말하는 듯합니다
. 이
‘병
(?)’을 치료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
“열심히 공부하면 됩니다.”
하지만
, 그게 뜻대로 되지 않는 게 바로 수학입니다
. 수학을 잘 하는 머리가 따로 있는 게 아닌가하는 의심도 떨쳐버릴 수 없습니다
. 이렇게 생각하는 게 오히려
, 수학이라는 거대한 벽 앞에서 좌절의 맛을 보았던 이 땅의 수많은 수험생에게 위로의 말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 과학의 언어라 불리는 수학은 그런 학문입니다
.
그 수학 시간에 수없이 들었던 것이 바로 방정식이라는 녀석입니다
. 수학 선생님이 마치 필살기로 사용했던 방정식을 통하면 희한하게도 그 어렵던 문제도 뚝딱
‘해
’를 토해 놓곤 했죠
. 똑같은 방정식을 사용해도 누구나 다 같은 결과를 만들어내지는 못해도 말입니다
.
방정식
(equation)의 사전적 정의는 미지수가 포함된 식에서
, 그 미지수에 특정한 값을 주었을 때만 성립하는 등식을 말합니다
. 더구나 물리학 방정식에서는 수와 특수한 문자들의 향연이 펼쳐집니다
. 뉴턴의 운동법칙
, 훅의 법칙
, 맥스웰 방정식
, 슈뢰딩거 방정식 등 방정식을 만든 수학자들의 이름 뒤에는 온갖 외계어가 난무합니다
. 그래서인지 서점 과학책 코너에서 발견한 이
‘아름답고 우아한 물리학 방정식
’이라는 책을 보자마자 짜증과 함께 호기심이 밀려왔습니다
.
“물리학 방정식이 아름답다니!, 심지어 우아하다니!”
누군가에게는 지옥과 같은 숫자와 문자의 나열이 아름답고 우아하게 보일 수 있다는 점에서 질투심마저 일었습니다
. 나중에 찾아보니 원서의 제목은 이 번역본의 부제로 쓰인
‘세상을 이해하는
15가지 법칙들
(All of Physics (Almost) in 15 Equations)에 가까웠습니다
. 번역하는 과정에서 출판사가 붙였을 이 제목은 전혀 엉뚱한 말은 아니었습니다
. 책의 저자가 각 방정식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아름답다
’ ‘우아하다
’ 라는 말을 반복하기 때문입니다
.
‘아름답다
’ 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즐거움과 기쁨을 줄 만큼 예쁘고 곱다
‘라는 말인데 문학에서나 쓸 법한 이 아름다운 말이
, 어떻게 그 딱딱한 물리학 방정식과 등식
(=)을 이루는지 괜한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 물론 물리학 방정식을 설명하는 이 책이 비교적 사이즈도 작고 페이지도 많지 않았다는 점도 호기심을 끄는데 한 몫 했습니다
.
제2장: 고난
저자인 브뤼노 망슬리에
(Bruno Mansoulié)는 프롤로그 첫 문장에서도 밝혔지만 입자물리학 연구자입니다
. 입자물리학
(particle physics)은 우리 우주를 구성하는 가장 궁극적인 물질과 법칙에 대해 연구하는 물리학의 한 분야로 모든 학문 분야 중에서 가장 작은 세계를 연구하는 분야입니다
. 그는 유럽입자물리연구소
(CERN)에서 거대강입자가속기
(LHC)의 검출기 중 하나인 아틀라스
(ATLAS) 실험을 담당하고 있으며
, 힉스 보손 입자 발견 실험에도 참여했습니다
. 2002년부터
2007년까지 프랑스 원자력 및 대체에너지 위원회
(CEA)에서 연구 책임자로 일한 경력이 있습니다
.
저자도 방정식이라는 수식이 주는 부담감을 의식했는지
, 서문에서
“가능한 한 많은 독자들이 이 책을 읽으면서 방정식과 화해하길 바란다
”는 소망을 전했습니다
. 그러면서 물리학자가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을 얘기합니다
. 그것은 모든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시선과 물리법칙 또는 방정식으로 생겨난 시선이라는 것
.
마침 전에 보았던 재미난 광고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 거대한 수족관 풍경을 배경으로 여자가 용기내어 남자에게 고백합니다
.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래
. 내 인생의 방향도 이제 너를 향해볼까
”, 이렇게 말하는 여자 앞에서 백기를 들지 않을 남자가 있을까요
. 로맨틱한 배경음악은 극에 달하고
, 이윽고
(공대생인 듯한
) 남자가 흐뭇한 미소를 짓다가 돌연 진지한 태도로 바꿉니다
.
“지금부터 내 말 잘 들어
, ‘속도
’는 벡터값이라 이미 방향성을 내포하고 있어
. 이해가 돼
. 그때는 스칼라 값인
‘속력
’이라고 표현해야 돼
. 알았지
”라고
.
우리가 무지개를 바라보면서 느끼는 아름다운 자연 풍경을 물리학자들도 똑같이 느끼지만
, 물리학자들은 곧이어 빛의 전파와 빛의 물리적 성질 같은 빛에 관한 이론적 실제적 지식이 무지개를 바라보는 시선 뒤로 소리 없이 펼쳐진다고 합니다
. 물리학자도 분위기를 깨지 않고 멋진 프로포즈를 주고받을 수 있지만
, 그 뒤에 숨겨진 자연의 원리를 탐구하는 정신은 잊지 않는다는 뜻으로 읽혔습니다
. 저자의 말대로
, 물리학에 관한 방정식을 안다 하더라도 무지개를 바라보는 자신의 관점은 전혀 좁혀지지 않으며 방정식을 알면
‘무지개의 아름다움을 오히려 더 잘 이해
’할 수 있다
, 라고요
.
이러한 관점으로 책을 쓴 저자는 그 수많은 방정식 중에서 역사적인 진전이나 진정한 과학적 혁명에 관련한 이야기를 담은 방정식을 택합니다
. 저자는 빛
, 물질
, 열 등과 관련된 어떤 현상이나 어떤 세계에 대한 견해를 드러낸 방정식부터 선보입니다
. “수학이 물리학을 둘러싸고 있기 때문에 물리법칙들은 수학 공식처럼 표현되는데
, 그런 측면에서 초반에 살펴볼 빛의 반사 법칙과 굴절 법칙 등은 한 분야에 국한된 것처럼 범위가 작은 방정식으로 느껴질지 모른다
.” 작은 방정식
(?)으로 시작한 책은 점점 범위가 확장되어 우주를 겨냥한 큰 방정식으로 나아갑니다
.
제3장: 수련
이와 같은 저자의 저술 방향에 따라
, 책의
1장이 유클리드가 기원전
3세기에 세운 방정식
, 빛의 반사 법칙
(θ
r = -θ
i)으로 시작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 모르겠습니다
.
이 방정식은 광선이 호수 표면이나 거울 등의 반사면에 도달했을 때 어떻게 반응하는지 설명하는 것으로
, 저자의 말마따나 반사가 무엇인지를
‘설명
’할 수 있다는 점이 획기적이고 근본적인 발전을 보여줍니다
. 물체가 물에 비친 모습을
‘설명할 수 있으며
’, 이것이 나머지 부분인 반사된 물체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는데 이 관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다
’라는 개념 자체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 저자는 이 때를 과학적 사고가 무엇인지 처음으로 깨달은 순간 중 하나라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
또한 광선이 반사되지 않을 때 투명한 매질에서 또 다른 투명한 매질로 이동하는 광선에 어떤 일이 생기는지 설명하는 굴절의 법칙
(n2 sin θr = n1 sin θi)이 소개됩니다
. 굴절의 법칙은 쉽게 늪지에 막힌 막대기 끊어진 것처럼 보이고 수영장에 잠긴 쭈글쭈글한 자신의 하반신을 떠올리면 됩니다
. 굴절의 법칙이 나중에 매우 보편적이고 강력한 물리학 법칙인
‘최소 작용의 원리
’로 어떻게 이어지게 됐는지 소개하는 부분에서는 공식 하나가 기여하는 과학 발전의 일면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최소 작용의 원리는 현대과학의 한 축인 양자역학에 적합하다는 사실을 알게 됨
). 자연은 항상 가장 짧고 가장 용이한 길을 따라 작용하기를 바란다는 원리를 방정식 하나로 설명한 셈이다
.
그래도 뉴턴의 역학 법칙과 만유인력의 법칙은 어디선가 많이 들어 본 익숙한
(?) 방정식입니다
. 힘이란 질량에 가속도를 곱한 값
(F = m γ
)이라는 유명한 공식에서 저자는
‘인간이 신에게서 그 광휘를 조금 걷어낸
’ 성과라고 역사적 의미를 부여합니다
. 흔히
F = ma라고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저자는 학창시절에
‘a’보다 먼저 γ
(감마
)라고 배웠다며
, 그리스어 문자가 주는 무게감 때문에 바뀐 것 같다고 말합니다
. 하지만 저자는 어떤 물리변수
, 어떤 개념을 명확하고 강력한 방식으로 나타내는
‘γ
’가 기호들의 기호라고 남다른 애정을 숨기지 않습니다
.
만유인력의 법칙은 뉴턴의 사과로 유명한 공식입니다
. 하지만 천체의 운동과 지구의 중력을 처음으로 연관시킨 이 기념비적인 사건에 저자는
‘한 번도 마음이 끌린 적이 없다
’고 단언합니다
. 물리학자인 저자가 이 방정식을
‘한 번도 좋아해 본 적이 없다
’고 이유를 말하는 대목도 흥미롭습니다
.
좀 더 한걸음 들어가면
, 우리 주변의 공기를 비롯해 여러 기체의 반응을 기술한
‘이상기체 법칙
(PV = nRT)’은 자전거펌프
, 압력솥 등의 원리를 설명하고
, 금속 조각의 진폭은 잡아당기는 힘에 비례한다는 훅의 법칙
(F = kX)은 에펠탑을 짓는데 철근을 어떻게 배열하고 선택해야 하는지 계산할 수 있습니다
.
그 이름도 낮선
‘나비에
-스토크스 방정식
’에 이르면 저자는 이를 두고
, 단언컨대 미학적 관점에서 논의의 여지없이
‘아름다운
’ 방정식이라고 칭합니다
. 점성을 가진 유체에 대한 일반적인 운동방정식인 나비에
-스토크스 방정식은
‘클로드 루이 나비에
’와
‘조지 가브리엘 스토크스
’가 처음 소개하였다고 붙여진 이름입니다
. 유체의 비점성
(invisid) 흐름을 다루는 미분방정식인 오일러 방정식을 확장한 것이라고 한다네요
(에서 끝내겠습니다ㅠㅠ
). 한마디로 이는 기본적으로 유체를 대상으로
F=ma를 해석한 방정식이라고 생각하면 쉽습니다
.
저자는 나비에
-스토크스 방정식이 어려울 것 같은 느낌과 그리스 문자들
, 난해한 나블라 연산자에도 불구하고
, 방정식을 풀어보면 그 기저에 감춰진 물리학은 간단하다고 말합니다
. 유체역학 때문에 비행가를 조종해도 위험한 사고가 날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로 저자는 독자에게 또 쉽게 한발 다가갑니다
.
“결국 방정식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무엇일까?
방정식의 기저에 감춰진 기초물리학일까.
아니면 유체역학의 응용 분야가 가진 강력함과 그 범위일까.”
방정식은 갈수록 난해해지고 낯설어지지만 저자가 소개하는 방정식 이야기도 점점 흥미로워집니다
. 빛 역시 전자기파의 하나임을 증명한 맥스웰 방정식에서 그
‘강력함과 아름다움
’에 놀라고
(심지어 우아하기까지 극찬한다
), 최근 블랙홀 사진으로 다시금 그 진가를 인정받은 일반 상대성 이론
(E=mc2)과 필자가 보기만 해도
‘전율한다
’는 디랙 방정식의 사연을 소개합니다
.
고양이 가상실험으로 유명한 슈뢰딩거 방정식과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는 양자역학의 세계로 인도합니다
. 마지막 장에 이르러 파인먼 다이어그램과 표준모형까지 구경
(?)한다면 수학을 오랜 만에 가까이 한 독자는 머리가 좀 얼얼할지도 모릅니다
.
영화 [박사가 사랑한 수식] (사진: 네이버 영화)
제4장: 복수
수학 영화를 하나 소개하고 끝을 맺는 게
, 왜 저자가 물리학 방정식이 아름답다고 말했는지에 대한 해답이 될 것 같습니다
. 여기에서 말하는 수학 영화는 일본 영화
[박사가 사랑한 수식
](2006년
)를 말합니다
. 교통사고로 기억을
80분 밖에 저장하지 못하는 주인공은 세상의 모든 것을 숫자로 풀이하는 수학 박사입니다
. 수학을 통해 소통하는 과정을 따뜻하게 그려낸 작품인데
, 영화를 안 보신 분들은 소통의 방법이 수학이라는 점을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
아무튼 결론적으로 영화 제목이자
, 영화에 나오는 방정식의 주인공은 바로 오일러 공식
(eiπ + 1 = 0)입니다
. 레온하르트 오일러
(Leonhard Euler)는
1707년에 스위스 바젤에서 태어난 수학자이자 물리학자
, 천문학자입니다
. 앞서 여러 방정식을 소개할 때 잠깐 이름이 등장했죠
. 이 오일러 공식은 수학자들이 뽑은 가장 아름다운 방정식이기도 합니다
. 그렇다면 왜 오일러 공식을 아름답다고 했을까요
?
무한급수에 흥미를 갖고 연구를 시작한 오일러는 무한급수를 이용해 원주율
‘π
’를 나타낼 수 있음을 발견합니다
. 급기야 그동안 아무런 관계가 없었던 지수함수와 삼각함수가 복소수 세계에서는 연결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 이런 사고의 확장은 결국 현존하는 모든 수
, 기호
(자연상수
e, 허수단위
i, 원주율 π
, 숫자
0과
1 그리고 지수연산
, 곱셈연산
, 덧셈연산
, 등호연산 등
4가지 연산 등이 등장함
)의 합이 제로
(0)가 된다는 것에 이르게 됩니다
. 이 과정은 영화에 나오는 루트
(정수리가 평평하다고 해서 박사가 어릴적에 루트라는 별명을 지어줍니다
)의 말을 정리하여 옮겨 보겠습니다
.
“π는 원주율
, i는
-1의 제곱근으로서 허수입니다
. 우주의 끝에서 끝까지 계속되는 수 π와 결코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허수
(i). 문제는 바로 자연 상수
e. 이 상수
e를 계산해 보면 그 값은
, 2.7182818284.... 이건 π와 같아요
. 한없이 계속되는 무리수입니다
. 무한한 우주로부터 π가 이
e의 품으로 내려앉고
, 부끄럼쟁이
i와 악수를 합니다
. e도
i도 π도 결코 연관성이 없었죠
. 하지만 한 사람의 인간이 여기에
‘+1’를 하면 세상은 바뀝니다
. [eiπ + 1 = 0]
이처럼 모순되는 것들이 통일이 되어 제로
(0), ‘무
(無
)’ 로 끌어 앉게 됩니다
. 이것이 바로
18세기 최고의 수학자 오일러가 만든
‘오일러 공식
’입니다
. 그는 무관계로 밖에 보이지 않는 수의 사이에서 자연스런 연결성을 발견한 것입니다
. 이건 어둠 속에 빛나는 한 줄기 아름다운 유성과 같죠
. 이것이 박사님이 사랑한 수식입니다
.”
루트는 마저 설명합니다
. 밤하늘에 빛나는 별 하나의 아름다움
, 들에 핀 한 송이 꽃의 아름다움을 설명하기 어려운 것처럼
, 이 수식의 아름다움을 설명하는 것도 어렵다고
. 하지만 박사님에게 그것을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고 배우게 됩니다
. 직감을 갈고 닦아서 풍부한 감성을 키우면 이 아름다움은 반드시 느낄 수 있다고
, 그렇기 위해서라도 수학에 애정을 갖고 함께 노력해주길 바란다고 말이죠
. 어떻게 좀 어렴풋이 방정식의 아름다움이 느껴지시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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