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와 사자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 누구나 한번쯤은 상상해봤을 일이다. 이런 상상은 이소룡과 성룡이 싸우면 누가 이기는지, 배트맨과 아이언맨이 싸우면 누가 이기는지 언쟁하는 일만큼 쓸데없는 일이긴 하다. 하지만 당장 유튜브에 호랑이와 사자의 싸움을 검색하면 실제로 이 녀석들의 싸움 영상을 볼수 있다. 인간의 호기심이 만들어낸 억지스런 싸움이긴 하지만 한번 보면 눈을 떼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호랑이와 사자는 각기 사는 환경도 다르지만 습성도 사뭇 다르다. 호랑이가 깊은 숲속이나 밀림 지역에서 대개 단독생활을 하며 밤에 사냥을 한다면, 아프리카의 초원에 사는 사자는 하나 또는 여러 가족단위를 기본으로 무리를 지어살며 사냥도 주로 암컷 무리가 한다.
지금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산업에 호랑이와 사자의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전 세계 파운드리 업계를 주도하고 있는 삼성과 TSMC(대만)를 보면 이들 업체가 꼭 호랑이와 사자의 대결 같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에서 단연 앞서고 있는 TSMC(53.1%)를 삼성(17.1%)이 뒤쫓고 있는 상황이나, 양산 수율과 같은 기술적 완성도 면에서 이들 업체를 능가할 기업은 당분간 없을 듯하다.
삼성 vs TSMC
파운드리 산업은 단지 더 나은 공정으로 더 많은 반도체를 찍어낸다고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파운드리 기업을 위주로 한 디자인 하우스, 팹리스, 각종 소부장 협력사들의 클러스터와 같은 생태계 형성이 매우 중요하다. TSMC는 이를 처음부터 중요시해 왔기에 자국 대만의 중소형 파운드리와 고객사는 물론 세계 곳곳에 유기적인 생태계를 조성하는데 노력을 기울였다. 마치 군집생활을 하며 무리로 사냥을 하는 사자와 같은 모습으로 활동 영역을 넓혀 초원의 왕이 된 것이다.
반면에 비교적 후발주자격인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사업부를 몇 년 만에 굴지의 파운드리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말그대로 호랑이 새끼를 키워 파운드리 밀림을 휘저어 놓은 셈이다. 삼성은 최근 파운드리 고객사가 100곳을 넘어섰다고 밝혀 생태계 확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줬다. 2017년 파운드리 사업부를 분리할 당시만 해도 고객사가 30곳에 불과했던 삼성전자는 2026년까지 고객사를 300곳 이상으로 늘린다는 포부다.
최근 이 호랑이와 사자의 싸움이 메인 고객 유치전으로 옮겨 붙었다. TSMC는 최대 고객사인 애플에 이어 인텔의 구애도 받고 있다. 12월 중순 대만으로 날아간 인텔 팻 겔싱어 CEO가 TSMC에 3nm 전용라인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업계가 이를 주시하고 있다. 인텔의 경쟁사이기도 한 AMD도 TSMC의 고객사(5, 7nm)이기 때문에 향후 파운드리 수주 판도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인텔이 AMD에 앞서 첨단 3nm 공정을 선점하려 한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내비친 이상, AMD의 물량이 삼성으로 갈 수 있다는 전망(12월 현재)이 우세하다. 최근 IBM으로부터 5nm 기반 칩 생산을 수주 받은 삼성은 퀄컴 AP 스냅드래곤8 1세대와 AMD 4nm 파운드리를 수주하여 미세공정 경쟁에서 TSMC에 뒤처지지 않겠다는 각오이다.
3nm vs 3nm
향후 관심거리 중 하나는 최첨단 3nm 공정이다. 최근 3nm 시험 생산을 시작한 TSMC는 2022년 하반기에 본격 양산에 들어간다고 밝혔고 삼성전자는 이에 앞선 2022년 상반기 양산을 목표하고 있다. 특히 최강의 FinFET 제조 공정을 앞세운 TSMC와 달리 삼성전자는 2022년 상반기 GAA 기술을 3nm에 도입하고, 2023년에는 3nm 2세대, 2025년에는 GAA 기반 2nm 공정 양산 계획을 밝혔다.
삼성전자의 독자적인 GAA 기술인 MBCFET(Multi Bridge Channel FET) 구조를 적용한 3nm 공정은 FinFET 기반 5nm 공정 대비 성능은 30% 향상되며 전력소모는 50%, 면적은 35% 감소된다고 밝혔다.
이처럼 삼성의 뛰어난 기술이 TSMC를 위협하고 있다고는 하나, 아직까지는 생태계나 인프라 면에서 사자의 무리가 호랑이의 용맹함을 압도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모를 일이다. 사자가 도태될지 호랑이가 낙오될지는. 새로운 시대에는 강력한 유전자를 먼저 수혈 받은 종이 생존할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랑이와 사자의 싸움 결과가 궁금한 이가 있다면 유튜브를 열어볼 일이다. 호랑이의 해 아닌가.
<저작권자(c)스마트앤컴퍼니.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