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밥상을 책임지던 그가, ‘파하~’ 웃으며 ‘앰앰오 알피지(MMORPG)’를 진지하게 발음하며 게임 광고에 등장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은 생각했을 것이다. “최불암 아저씨가 왜 거기서 나오지”, 라고. 최신 게임 방식과 최불암 시리즈의 허무 개그를 접목해서 광고 효과를 보려는 기획 의도가 반영됐을 것이다. 그도 그렇지만 주로 젊은 세대를 타깃으로 하는 게임 광고에 원로 배우의 뜬금없는 등장 그 자체가 홍보 효과라는 점은 두말하면 잔소리이다.
‘ㅇㅇ 왜 거기서 나와’라는 말이 유행어 아닌 유행어로 여기저기에서 응용되는 모양이다. 요새 대세인 트로트 가요에서도 노래 제목(니가 왜 거기서 나와)으로 쓰인 경우도 있다. “니가 왜 거기서 나와, 내 눈을 의심해보고 보고 또 보아도, 딱봐도 너야, (중략) 근데 지금 니 옆에 이 남잔 누군데, 교회 오빠하고 클럽은 왜 왔는데, 너네 집 불교잖아~”라고. 믿었던 연인을 클럽에서 뜻밖에(?) 만나게 되어 충격받은 상황을 노래한 것 같다. 이처럼 ‘왜 거기서 나와’라는 말은 의외의 장소에 나타난 의외의 인물과 상황을 표현할 때 많이 쓰인다.
유전자의 실체를 벗기는 가장 지적인 탐험을 그리는 그래픽노블 <게놈 익스프레스,2016> 초반에
그 유명한 물리학자 슈뢰딩거 박사 캐릭터(왼쪽 그림)가 ‘뜬금없이’ 등장한다. (출처 NAVER 책, 표지 그림)
필자는 최근 주식시장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한 기업의 이름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해외 직구족이 공격적으로 투자한 미국 헬스케어 기업 ‘슈뢰딩거’의 주가가 하락하면서 투자자들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지난 2월 신규 상장 이후 7월까지 주가수익률 (무려) 164.9%를 기록한 이 업체는 신약 개발 부문에서 파괴적 혁신을 이룰 기업으로 평가되기도 했지만,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가 투자한 기업으로도 유명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제2의 테슬라 주식이라고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현대 과학에 관심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은 알겠지만, 슈뢰딩거(Erwin Schrodinger)가 누구인가. 물질의 파동이론과 양자역학의 기초들을 세우는 데 기여하며 1933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으면서 과학사에 한 획을 그은 물리학자가 아닌가. 1924년 물질 입자들이 이중성을 가지고 어떤 상황에서는 파동처럼 행동한다는 드 브로이의 제안을 받아들여, 이를 파동방정식(슈뢰딩거 방정식)으로 기술하였다. 양자역학의 불완전함을 보이기 위해 고안한 고양이 사고실험(슈뢰딩거의 고양이)에서도 그 이름이 새겨져 있다.
신약 개발 기업의 이름으로 물리학자 ‘슈뢰딩거’라는 이름을 쓴 이유를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그에 대해 조금만 더 안다면 생뚱맞은 이름이 아니란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그는 물리학 뿐만 아니라 여러 분야에 아주 다재다능한 물리학자였기 때문이다. 다방면의 문학과 철학에 능통했던 슈뢰딩거는, ‘자연과 그리스인’ 이라는 저서를 통해 고대 그리스 과학과 철학에 대해 깊이 있는 통찰을 보여줬으며 특히 양자역학이 유전구조의 안정성을 설명하는데 어떻게 이용될 수 있는지 ‘생명이란 무엇인가(1944)’라는 현대의 고전을 남겼다.
에볼라 치료제가 코로나19 치료제로
특히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은 후에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생물학 연구자에게 많은 영감을 준 책이라는 점에서 그의 인간과 생명에 대한 치열한 탐구정신을 엿볼 수 있다. 유전자의 실체를 벗기는 가장 지적인 탐험이라는 부제를 단, 흥미로운 그래픽노블 <게놈 익스프레스,2016> 초반에 슈뢰딩거 박사 캐릭터가 ‘뜬금없이’ 등장한 것만 보더라도 그의 고뇌가 아직도 진행형이라는 점을 잘 보여준다 하겠다.
갑자기 거기에서 나와, 우리에게 놀라움과 함께 교훈을 주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게 사람이든 뭐든, 때로는 풀리지 않는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하기도 한다. 현재 가장 유력한 코로나19 치료제로 꼽히고 있는 ‘렘데시비르’는 미국 제약사 길리어드 사이언스가 당초 에볼라 치료제로 개발한 약이었지만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에 일부 치료 효과를 본 케이스다. 엉뚱한 곳에서 갑자기 툭 튀어나와 ‘니가 왜 거기서’라고 생각해도 좋으니, 무엇이라도 이 지긋지긋한 전염병을 물러나게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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