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길 먼 휴대전화 자급제
소비자 중심의 정책임에도 해결할 문제 많아
  • 2012-06-04
  • 김창수 기자, cskim@elec4.co.kr

외화를 시청하다 보면 곤경에 빠진 주인공이 급히 마트에 들려 휴대전화를 구매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주인공은 점원에게 자신이 구매할 휴대전화가 3G인지, 4G인지, 어떤 요금제를 선택할 지 물어보지도 않고 가격만 급히 물어보고 금액을 낸다. 영화상 대충 시간을 계산해 봐도 휴대전화를 구매하는 시간이 30초도 채 되지 않는다. 유유히 떠나는 주인공의 모습 뒤로 그동안 우리가 이용했던 휴대전화 구매 절차가 오버랩 된다.


“단말기 자급제는 이동통신사 중심의 단말기 유통 구조를 개선해 이용자가 이동통신사뿐만 아니라 제조사, 마트, 온라인 쇼핑몰 등에서도 단말기를 구매해 희망하는 통신사를 선택·이용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사용자의 단말기 선택권을 확대하고 합리적인 통신 소비를 유도할 수 있도록 시행하는 제도이다.”  - 방송통신위원회 -

지난 5월 1일, 단말기 자급제(블랙리스트 제도)가 전면 시행됐다.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는 작년 11월 발표한 단말기 자급제 추진 계획에 따라 전산 시스템 개발 등을 완료해 이동통신사에 단말기 식별번호(International Mobile Equipment Identity, IMEI)를 등록하지 않고 휴대전화를 사용할 수 있는 단말기 자급제를 시행한다고 밝혔다. 앞서 언급한 영화 속 이야기처럼 휴대전화 구매의향자는 이통사와 상관없이 대형 마트나 가전 유통매장, 온라인 등에서 휴대전화를 손쉽게 구매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기존 휴대전화 구매 시 사용자는 약정 기간, 부가 서비스 등의 많은 제약이 따랐다. 마음에 드는 휴대전화를 선택하려면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구매하던 때도 많았다. 예를 들어 올 초 전국을 강타한 4G LTE(Long Term Evolution) 열풍을 들 수 있다. 이통사들은 LTE 망이 전국적으로 완성 단계가 아님에도 서로 자사의 LTE 폰을 마케팅 전면에 내세웠고, 소비자는 비싼 통신요금과 단말기 값을 지불해야만 했다. 또한 소비자가 고성능 LTE 폰의 구매의사가 없음에도 한정적인 피처폰 종류와 판매 직원들의 권유(보조금 등의 연유)로 마음에 드는 단말기를 살 수 없었다.
단말기 자급제의 또 다른 이름은 블랙리스트 제도라 한다. 반대로 기존 휴대전화 구매 시 사용했던 방식은 화이트리스트 제도이다. 얼핏 블랙과 화이트의 색감을 떠올려 블랙리스트 제도가 부정적인 느낌이 들 수 있다. 하지만 내용은 정반대라 할 수 있다. 기존 화이트리스트 제도는 이통사가 자사 단말기의 코드 리스트를 수집해 그 외(타사)에 단말기 코드에 대해 개통을 거부했다. 즉, 깨끗한 상태의 단말기만을 이통사가 취급했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블랙리스트 제도는 리스트에 오른 단말기(분실/도난)가 아니라면 어떤 제품이라도 기존 유심 칩을 꼽아 사용할 수 있어, 사용자는 다양한 경로로 단말기를 구매해 이용할 수 있다. 그러나 휴대전화 자급제에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다. 골격만 갖췄을 뿐 아직 제대로 굴러가지 못하고 있다.
 

휴대전화 자급제 왜?
방통위 관계자는 “단말기 자급제 시행으로 이통사의 대리점과 제조사, 유통업체, 온라인 판매 등 다양한 유통망이 형성되어 유통망간 경쟁을 촉진하고 중저가 단말기 등의 제조/유통을 활성화해 단말기 선택권이 확대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면서 “단말기 유통 구조 개선은 가상이동망사업자(Mobile Virtual Network Operator, MVNO), 선불요금제 등이 활성화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해 사용자의 합리적 통신 소비를 유도할 수 있게 될 것이다”고 언급했다. 휴대전화 자급제는 소비자에게 분명 매력적인 정책임이 분명하다. 그동안 이통사들은 유통시장 장악과 보조금이라는 두 가지 칼자루를 갖고 통신 시장을 누볐다. 상대적으로 약자였던 소비자는 이에 순응할 수밖에 없었다. 휴대전화 자급제가 정착되면 이통사는 서비스 품질과 통신비용만으로 경쟁해야 한다. 소비자는 자신의 필요 유무(서비스 품질과 통신비용)에 따라 이통사를 선택할 것이고, 이통사는 이에 맞는 경쟁을 펼쳐야 할 것이다. 이는 서비스 품질 강화와 저렴한 통신비용이라는 긍정적인 결과를 낳는다. 하지만 이통사의 입장은 다르다. 단말기와 통신비용이 나뉘면 매출 하락과 함께 통신시장 장악력이 크게 떨어진다. 보조금이라는 유인책이 더 이상 소비자에게 어필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약정 할인 제도(2, 3년 약정 계약을 맺어 단말기 요금을 할인해주는 제도)나 결합할인 요금제(다년간 서비스를 이용하거나 여러 서비스를 묶어 사용하면 일정 부문 혜택을 주는 제도) 등의 서비스를 휴대전화 자급제에 적용시키지 않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현재 방통위는 단말기 자급제 시행과 함께 이통사에게 기존 휴대전화 구매 시와 동일한 혜택을 줘야 한다고 요청한 상태다. 그러나 이통사들은 단말기 구입과 약정을 전제로 할인해 주는 다른 곳에서 구입한 휴대전화까지 요금할인을 적용하는 것은 어렵다고 난색을 표한 바 있다. 대형 마트나 이통사 직영점 등의 유통업체들도 휴대전화 자급제에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제조사들이 자급제에 맞는 휴대전화를 공급해 주지 않을뿐더러 소비자의 눈높이가 높아져 중국산 저가 제품으로 매장을 채우기도 어렵다는 것이다. 또한 소비자가 이통사의 보조금 없이 마트나 직영점 등에서 단말기를 구매할지 예측할 수 없어, 휴대전화 자급제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제조사도 마찬가지다. 업계 관계자는 “공 단말기가 소비자에게 얼마만큼 팔릴지 가늠할 수 없어 제품 제작에 난항을 겪고 있다”면서 “방통위에서 휴대전화 자급제를 시행한 만큼 공 단말기를 제작하겠지만 시간은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방통위는 시행 첫 달에는 중고 단말기나 재고 단말기를 중심으로 시장이 형성되지만, 중하반기 경부터 다양한 단말기가 출시돼 통신시장이 재편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렇다면 현재 소비자가 느끼는 휴대전화 자급제의 체감은 어떨까? 몇몇 얼리어답터들이 온라인 카페 등에 공 단말기에 유심 칩을 꽂아 사용하는 방법을 올려놓긴 했지만 대다수 사람들이 휴대전화 자급제를 잘 알지 못했다. 또한 휴대전화 자급제를 이용하려 해도 어렵다는 반응이 대다수였다. 휴대전화 자급제가 시행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기에 이런 반응이 나왔다면 이해할 수 있으나 상황은 다르다. 방통위가 시행 날짜에 급급한 나머지 이통사와 제조사, 유통사 간의 사전 조율이 매끄럽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소비자가 직접적인 혜택을 얻기 위해서는 몇 가지 넘어야할 산이 있다. 먼저 기술적 한계를 들 수 있다. 3G 휴대전화의 경우 기술방식과 주파수 대역의 차이로 KT/SKT(WCDMA)에서만 유심 기기 변환이 가능하나, LGU+는 CDMA 기술 방식으로 기기 변환을 할 수 없다. 중고 단말기도 유심히 살펴봐야 한다. LGU+의 3G 피처폰과 스마트폰은 IMEI 등록 없이 유심을 끼워 이용할 수 있지만 멀티미디어메시지서비스(MMS) 등은 사용이 제한된다. 많은 소비자들이 기대했던 해외에서 구매한 휴대전화도 국내 통신사들의 기술방식, 주파수 대역이 맞아야 개통이 가능하다. 특히 해외에서 구매한 휴대전화는 국내 이동통신사의 네트워크에 최적화 되지 않아 통화 품질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LTE 휴대전화는 사업자별로 서로 다른 주파수 대역과 지원되는 서비스가 상이해 국내 사업자 간 유심 칩 이동조차도 어렵다. 해결방법으로는 다른 환경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LTE 휴대전화를 제조사가 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휴대전화 자급제를 이용하려는 소비자는 가입하는 이통사에 관련 내용을 점검한 후 서비스를 신청해야 한다.



휴대전화 자급제가 안착되면 소비자들에게 보여주기 식의 공짜 단말기가 사라져 일정 부분 이통사의 서비스 요금 인하로 이어질 것이다. 결과적으로 통신시장은 이통사 중심에서 소비자 중심으로 재편될 것이다.
‘첫 술에 배부르랴’라는 속담처럼 휴대전화 자급제가 시장에 뿌리내기까지는 다소의 진통과 시행착오가 예상된다. 모쪼록 이 제도가 조기 정착되어 소비자에게 더 많은 혜택이 주어지길 기대해 본다.

방통위는 지난 7일 할인요금제 관련 이통3사와 협의를 진행한 결과, SKT와 LGU+는 서비스 약정 가입 시 기존 이통사에서 단말기를 구입한 가입자에게 적용한 요금할인율을 단말기 유통 경로에 관계없이 동일하게 적용하기로 했다. 다만, KT는 휴대전화 자급제를 위한 별도의 요금제를 신고했다. SKT는 영업전산 개발 등의 준비로 6월 1일부터 자급제 이용자의 약정 할인 가입을 받지만, 5월 이용분이 있을 경우 소급 적용하기로 했다. LGU+는 5월 29일부터 자급제 이용자의 약정 할인 가입을 받는다. KT는 5월 29일에 휴대전화 자급제의 요금제를 출시한다.

※ SKT의 3G 정액요금제(올인원) : 요금할인율은 약 30%, LTE 정액, 요금제는 약 25%
※ LGU+의 3G 정액요금제(스마트) : 요금할인율은 약 35%, LTE 정액, 요금제는 약 25%
※ KT의 자급폰 요금제는 선택형 요금제로 3G와 LTE 구분 없이 음성 기본료는 약 25% 할인율(2년 약정) 적용, 데이터와 문자 기본료는 요금할인 미적용

이에 따라, 기존에 요금할인 혜택을 받지 못했던 ①중고 단말기 이용자 ②약정 기간 만료 후, 단말기를 계속 사용하는 이용자 ③일반 유통망에서 단말기를 새로 구입하는 이용자도 요금할인이 적용됨으로써 이동전화 단말기 자급제가 활성화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


단말기 자급제 시행 후 유의사항

단말기 식별번호 표기와 MMS(멀티미디어 메시지 서비스) 호환
5월 이후 출시되는 단말기는 이용자가 알 수 있도록 단말기 내부(SW적으로 표기)나 뒷면/박스에 단말기 식별번호(IMEI)를 표기해 출시된다. 5월 이후 신규 출시되는 스마트폰은 OMA-MMS 규격을 탑재해 통신사를 변경하더라도 MMS 이용에 제한이 없다. 다만, 5월 이전 출시 모델과 피처폰은 MMS 이용이 제한될 수 있다.
※ OMA(Open Mobile Alliance) : 모바일 개방형 표준개발을 위한 표준화 기구

분실/도난 단말기 신고와 사용 차단
이용자는 단말기 분실/도난 시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는 이통사에 신고를 해야 한다. 이는 단말기 자급제 시행 전과 동일하다. 다만, 일반 유통망에서 구입한 단말기는 타인이 사용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이통사에 이동전화와 함께 단말기 식별번호를 함께 신고해야 한다. 단말기 식별번호를 본인이 관리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는 이통사에 단말기 식별번호 등록을 요청할 수 있다. 또한 정보통신진흥협회(KAIT)는 이통사에 신고된 분실/도난 단말기 정보를 공유하는 통합관리센터를 구축해 사용을 차단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했다.

분실·도난 단말기 유통 방지
정보통신진흥협회(KAIT)는 지난 5월 1일부터 중고 단말기 구매 시 해당 기기가 분실/도난 기기인지 소비자가 조회할 수 있는 서비스(www.checkimei.kr, www.단말기자급제.한국)를 제공한다. 5월 이후 출시 단말기는 식별번호(IMEI)로 조회 가능하며, 5월 이전 출시 단말기는 모델명과 일련번호(Serial Number)로 조회가 가능하다. 또한 분실·도난 단말기 구매에 따른 이용자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안전구매(에스크로) 서비스를 적용하고 있는 사이트에서 중고 단말기를 구입하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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