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 칼럼] 별 볼일이 많았으면
  • 2018-03-06
  • 신윤오 기자, yoshin@elec4.co.kr



별을 보러 갔다.

서울 근교의 산에 위치한 천문대였다. 아이를 앞세우고 갔으니 교육이라는 불순한(?) 의도가 없었다고는 부인하지 않겠다. 살다보면 어쩌다 ‘별 볼일’도 다 있는 법이니까. 도시에서는 별을 보려고 해도 잘 보이지 않는다. 도시 지역의 인공조명 때문에 빛이 산란하면서 밤하늘이 밝아지며 별이 보이지 않는 ‘스카이 글로(sky glow)’ 현상 탓이다. 빛 공해(light pollution)라고 불리는 이 현상 때문에 우주의 별은 본의 아니게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빛 공해를 피해 어둠에 싸인 산중턱 천문대에 서니, 거짓말처럼 별들이 나타나 하늘에 수를 놓았다. 천문대 가이드가 가리킨 초저녁 동쪽하늘 꼭대기에 가장 빛나는 일등성이 자리 잡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16개의 일등성 중 가장 북쪽에서 뜨는 별이라 찾기도 쉽고 기준별로 삼으면 된단다. 마차부자리의 알파성, ‘카펠라’다. 마차부자리의 주인공은 지혜의 여신 아테나의 아들로, 도시국가 아테네의 네 번째 왕에 올랐던 에릭토니우스이다. 절름발이였던 에릭토니우스는 자기 다리의 불편함을 덜기 위해 말 네 마리가 끄는 마차를 발명했다고 한다. 우리 조상들은 초겨울에 가장 먼저 뜨는 카펠라성을 보고 김장을 했다하여 ‘김장별’이라는 별칭도 가지고 있다.

카펠라성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쌍둥이자리’가 있다. 쌍둥이 형제가 다정하게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모습으로 형은 2등성인 카스토르이고, 동생은 1등성인 폴룩스이다. 제우스와 스파르타의 왕비 레다 사이에서 태어난 카스토르와 폴룩스 형제는 죽을 때까지도 우애가 깊었는데, 제우스가 형제의 우애에 감동해 두 개의 밝은 별로 만들어 주었다.
 

쌍둥이자리 아래로 가보면 오리온의 사냥개로 알려진 ‘작은개자리’가 자리잡고 있다. 작은개자리의 알파별 프로키온에서 좀 더 밑으로 내려가면 ‘큰개자리’ 시리우스가 겨울철 동쪽하늘 가장 아래에서 유독 빛나고 있다. 역시 오리온의 사냥개로 알려진 별자리이다.

시리우스별에서 다시 오른쪽 위로 올라가면 이들 큰개와 작은 개를 부리는 사냥꾼 오리온 별자리가 자리한다. 찌그러진 커다란 H자 모양은 사냥꾼의 몸통이고 H자의 네 귀퉁이에 있는 별 중에서는 붉은 별 ‘베텔게우스’와 파란 별 ‘리겔’이 유난히 빛을 발하고 있다. 포세이돈의 아들 오리온은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와 사랑에 빠졌는데,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그녀의 오빠 아폴론이 아르테미스를 속여 그녀가 쏜 화살에 오리온을 죽게 했단다. 제우스가 슬픔에 빠진 아르테미스를 위해 오리온 별자리를 만들어줬다.

오리온자리 위로 커다란 V자 모양의 별자리가 있는데 사냥꾼을 들이받으려고 달려드는 황소자리이다. 이 황소는 제우스가 페니키아의 공주 에우로파를 유혹하기 위해 변신한 것으로 황소자리의 알파별이 ‘알데바란’이다. 알데바란 근처에는 히아데스라는 이름의 성단(별 무리)이 있다. 천문대 천체망원경 속에 보이는 이 성단은 마치 별들의 구름처럼 암흑의 우주에 하얗게 떠 있었다.

그런데 알데바란별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머릿속에 하나 번뜩 떠오른 게 있었다. 지난해 말 ETRI(한국전자통신연구원)가 발표한 자율주행차의 두뇌, 일체형 프로세서 이름이 바로 ‘알데바란(Aldebaran)’이었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알데바란 전 모델(AB 3)의 프로세서 코어를 4개에서 9개로 늘리면서 원칩화(AB 5)했고, 올해까지 신경망 기술을 활용해 영상인식 엔진에 초고성능의 인공지능 기술을 넣는다는 계획이다. ETRI는 알데바란 칩의 성능은 세계적 수준이며 글로벌 경쟁업체의 분리형 칩과 비교해 가격경쟁력이 충분하다고 자신했다.

연구팀이 알데바란 별 이름을 붙인 이유는 아마도 자신들의 개발제품이 일등성처럼 가장 빛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겨울하늘의 알데바란을 오랫동안 바라보면서 반도체칩을 떠올린 일을 직업병(?)이라고 해도 할 수 없다. 겨울을 나고 봄의 문턱에 선 지금, 그저 별 볼일이 많았으면 했다. 그게 밤하늘의 별이든, 알데바란 같은 반도체의 별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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