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장 노트] 78, 5, 20…희망의 숫자

  • 2020-01-02
  • 신윤오 기자, yoshin@elec4.co.kr

78
컴퓨터 화면을 보던 이들이 갑자기 동요했다. 승률이 급격히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전 승부에서는 없었던 일이다. 컴퓨터 앞으로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알파고를 개발한 구글 딥마인드 관계자들의 얼굴 표정은 대체로 밝았지만 당황한 기색은 숨길 수 없었다. 이날 바둑 승부에서 최강의 바둑 인공지능은 결국 돌을 던졌다. “AlphaGo resigns” 2016년 3월13일이었다. 

이세돌은 앞서 알파고에게 내리 3판을 졌지만 운명의 4국은 오히려 침착했다. 하지만  알파고(흑)는 강했고 중반을 넘어선 전투 상황에서 백(이세돌)의 형세는 점차 불리해져 가고 있었다. 절체절명의 순간, 중앙 전투에서 반전이 일어난다. 두터운 검은(흑) 협곡 사이로 백기사가 느닷없이 돌진한 것이다. 이 끼운 수, 78수에 알파고가 깜짝 놀란 것 같다’고 당시 딥마인드의 하사비스 대표는 말했다(인공지능이 놀란 감정을 어떻게 표현하는지 모르겠지만).
 

시간을 건너 뛰어 2019년 12월 센돌 이세돌은 다시 인공지능(국산AI 한돌)과 마주 앉았다. 인공지능과의 바둑 대결로 세기의 관심을 끌었던 그다운 은퇴 방식이었다. 이세돌은 국내외 유수의 프로기사를 쓰러뜨린 '한돌AI'에 맞서 초반, 특유의 발 빠른 행마로 실리를 확보해 나갔다. 인공지능의 우세함을 인정하여 1국은 이세돌이 2점 안고가는 접바둑을 뒀기 때문이다.

74수까지의 상황은 2점을 선점한 흑(이세돌) 세력권 외의 지역을 백(한돌)이 점령해 나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백의 승률이 올라가고 있는 상황에서 흑이 중앙에서 백의 포위망을 뚫고 나가지 못하면 인공지능이 승리를 가져갈 수 있는 승부처였다. 하지만 이때 이세돌은 이 포위망을 뚫는 수로 또다시 중앙의 ‘78수’를 택했다. 이후 한돌AI가 흔들리며 승률이 확 떨어졌다. 바둑은 한돌의 기권(불계승)으로 허무하게 끝났고 이세돌도 허무한 승리라고 평했다. 

5
필자는 지난 6개월 전에 쓴 동명의 칼럼(죄인의 숫자)에서 ‘5’를 분쟁의 숫자라고 칭했다. 미중 무역 분쟁의 시발점이자 빌미가 된 5G의 ‘5’를 일컬은 말이었다. 해가 바뀌었고 미중간의 긴장감도 여전하지만 ‘5G’가 갖는 상징성과 폭발성은 그 이상이 되었다. 미국의 공격이 중국의 5G 굴기에 집중된 까닭도 5G 통신 기술을 이용해 IoT, AI, 자율주행 등과 같은 차세대 기술 패권을 선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 5G 경쟁력이 결집된 화웨이가 국가의 ICT 전략에 맞춰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것이 미국의 가장 큰 고민거리가 됐다.   

5G는 무선통신의 단순 진화가 아닌 4차 산업혁명 시대 국가 시스템 전반이 진화하는 디지털 전환의 기반이 된다. 우리나라는 세계 최초 상용화를 통해 전후방 산업의 파급효과를 제고하고 융합 서비스 발굴을 통해 글로벌 시장 선점 기회를 확보했다. 5G는 디지털 전환의 세계적인 흐름 속에 국가 ICT 성장을 견인하고, 새로운 융합서비스를 통해 산업의 기대수익도 폭발적으로 증가시킬 것으로 전망된다.  

20
아이를 데리고 마트에 간 아버지는 그만 우유와 사과를 훔쳤다. 1만원어치였다. 택시 기사를 하던 아버지는 질병으로 몇 개월째 일을 나가지 못해 수입이 없었다. 기초생활수급자로 나오는 돈으로는 네 식구가 먹고 살기에도 빠듯했다. 절도 행위로 붙잡힌 이 현대판 장발장 아버지는 마트 직원에게 ‘너무 배가 고파서 해서는 안 될 짓을 했다’고 용서를 빌었다. CCTV 장면에 비친, 고개를 숙이고 손을 모은 아버지의 초췌한 몸이 파르르 떨고 있는 게 역력했다. 

마트 사장은 이들의 딱한 사연을 듣고 출동한 경찰에게 선처의 뜻을 전했다. 경찰관들도 가만있지 않았다. 이들 부자를 돌려보내기 전에 국밥집에 들렀다. 그런데 여기에서 또 다른 선행이 일어난다. 마트에서 일어난 소란을 근처에서 듣고 보았던 한 남자가 국밥집까지 따라 들어와 부자에게 뭔가를 하나 건네주고 사라졌다. ‘20만 원’이 든 봉투였다. 나중에 밝혀졌지만, 60대 사업가인 이 남자는 당시 인근의 현금인출기에서 급히 돈을 찾았다. 

이세돌이 인공지능에 거둔 2번의 승리 뒤에는 ‘78’수가 있었다. 다들 ‘신의 한수’라고 말하지만 이는 기계가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창의력의 한수이다. 5세대 통신을 말하는 ‘5’G는 단지 속도의 빠르기만 나타내는 숫자가 아니라, 이를 기반으로 한 다양한 산업 활성화의 상징적인 숫자이다. 공교롭게도 2020년을 앞두고 인간의 선의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20만원의 온정까지 이어졌다. 우리가 굳이 희망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이처럼 인간의 노력과 선행과 함께 존재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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