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자들의 사회와 그 적들

  • 2018-11-06
  • 신윤오 기자, yoshin@elec4.co.kr

사업화 성공률 절반 '눈먼 돈'이냐 vs 결과에만 집착 '어쨌든 기술은 남아'

[ES칼럼] 어느 날 갑자기 눈앞이 보이지 않는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이 눈먼 사람들 사이에서는 또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 황당하지만 끔찍한 상황을 포르투갈의 주제 사라마구 작가는 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에 녹여냈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느닷없이 사람들이 전염병처럼 하나둘씩 눈이 멀기 시작하고, 이들은 생존을 위해 아귀다툼을 하지만 그 속에서 진정한 인간의 모습을 발견한다는 내용이다.

이처럼 원인을 알 수 없는 전염병으로 인해 눈이 먼 사람이 있는가 하면, 우리 사회에는 요즘 돈에 ‘눈먼’ 사람들이 많아 온통 시끄럽다. ‘나랏돈은 쌈짓돈’, ‘정부돈은 눈먼 돈’이라는 공공연한 비밀이 여기저기서 사실로 드러나자 여론이 들끓고 있다. 정부 지원금으로 명품백과 고급차를 구입하다 적발당한 비리 사립유치원의 원장들이 오히려 큰소리를 치고, 영수증도 필요 없는 특활비가 대표적인 눈먼 돈으로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중소기업 R&D 자금이 ‘눈먼 돈’이 되고 있다는 이슈가 국정감사의 도마 위에 올랐다. 이종배 의원(자유한국당)이 중소벤처기업부로부터 제출받아 공개한 ‘최근 5년간 R&D 지원 현황’ 자료에 따르면, 중기부(중소벤처기업부 이전 명칭)는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중소기업 R&D 과제 2만 8,815건에 4조 8,127억 원을 지원했는데, 이중 부정사용 건수가 총 122건에 달했다. 액수로 치면 자그마치 126억 원이다. 이런 R&D 사업에 정부는 매년 14조 원 가까이 쏟아 붓고 있어 전체적으로 따지면 눈먼 돈이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흥미로운 것은 R&D 지원에 따른 결과를 따진 대목이다. 기술 개발 성공률은 평균 93.9%에 이르는데, 사업화 성공률은 49.7%에 불과하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다시 말해, 기술을 개발하라고 준 돈을 부정한 곳에 사용한 것도 문제지만, 돈 들여 개발한 기술을 왜 사업화시키지 못했느냐는 것. 일부 언론은 사업화 성공이 절반에 못 미치는 이러한 결과를 두고 묻지마 지원이니 눈먼 돈이니 하는 말로 정부의 R&D 시스템을 비난했다.

이러한 R&D 자금 논란을 제기한 같은 날(10월 24일)에, 코엑스에서는 또 다른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한국전자전이 개막하던 날, 대한전자공학회와 반도체산업협회는 반도체 산학연 교류 워크숍이라는 행사에 실리콘웍스의 손보익 사장을 키노트 연사로 초청했다. 국내 대표적인 시스템반도체 기업의 대표답게 손 사장은 ‘현장에서 느낀 점’을 참석자들과 공유했다. 제품의 상용화, 매출 등 사업적 성과 외에도 기술은 남는다는 의식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정부와 산업계가 너무 결과에 집착한 나머지 과정을 도외시한다는 것을 지적한 것이다.

돈에 눈먼 자들은 있을 수 있지만, 눈먼 돈은 없다

한쪽에서는 국민 세금을 가지고 사업화 가치도 없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나무라고, 또 한쪽에서는 개발한 기술은 딴 데로 가는 게 아니라고 항변한다. 따지고 보면 모두 틀린 말은 아니다. 단지 정부 R&D용(이 있다면) 기술을 위해 개발했다면 비난받아야 마땅하며, 애초에 사업화 마인드 없이(개발) 기술이 나중에 막연히 쓸모가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눈먼 돈’은 관용구로 임자 없는 돈, 혹은 우연히 생긴 공돈을 말한다. 흔히 혈세라고 불리는 국민 세금은 어떠한 돈이라도 임자가 없거나 공돈이 아니다. 돈에 눈먼 자들은 있을 수 있지만, 눈먼 돈은 없다는 사실을 R&D 자금을 운용하거나 사용하는 사람들은 분명히 알아야 한다. 돈에 눈먼 자들의 사회에서 그 적들이 되지 않기 위해.
 

<저작권자(c)스마트앤컴퍼니.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본 기사의 전문은 PDF문서로 제공합니다. (로그인필요)
다운로드한 PDF문서를 웹사이트, 카페, 블로그등을 통해 재배포하는 것을 금합니다. (비상업적 용도 포함)
 PDF 원문보기


  • 100자평 쓰기
  • 로그인

태그 검색
본문 검색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