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걸테크, 사법제도 신뢰도 높일 수 있을까?
  • 2016-12-05
  • 김영학 기자, yhk@elec4.co.kr

4차 산업혁명은 빅데이터, IoT, 인공지능(AI) 등을 결합한 산업 시스템을 의미한다. 광범위한 정보를 분석해 인간의 행동 예측까지 가능해지며, 그 결과를 토대로 맞춤형 상품을 생산하고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물결은 법조계에도 밀려오고 있다. 이른바 리걸테크가 법률 시장을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인공지능이 과연 법률가를 대체할 수 있을까? 2015년에 공개된 OECD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사법제도에 대한 국민신뢰도는 27%(2013년 기준)로 조사대상인 42개국 중 뒤에서 4번째에 해당한다. OECD 회원국의 평균 신뢰도가 54%인 점을 감안하면, 한국의 사법제도에 대한 국민의 인식이 매우 낮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이번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가 당선될 것이라 예측한 언론사나 여론조사기관은 거의 없었다. 다만 인도 벤처기업 제닉AI의 창립자 산지브 라이(Sanjiv Rai)가 개발한 인공지능 모그IA(MogIA)만이 트럼프의 승리를 예측했을 뿐이었다.
지난 1월에 열린 제46차 세계경제포럼(WEF, 다보스포럼)에서는 인공지능, 로봇공학, IoT, 자율주행차, 3D 프린팅, 바이오 등의 기술로 2020년까지 전 세계에서 약 71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사실 기술의 발전으로 일자리가 대거 감소한다는 전망은 이미 2000년 이후 끊임없이 대두됐던 이슈이기도 하다.
사라질 일자리에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는 직업 중 하나가 바로 변호사 등 법률 관련 직업이다. 2002년 미국 변호사 협회에서는 2016년이면 변호사라는 직업이 사라질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했지만, 아직까지 변호사 직업은 건재하다.
하지만 앞으로는 상황이 급격히 바뀔 것으로 전망된다. 이른바 리걸테크(legaltech)가 등장하면서 법률 서비스분야에 빅데이터, 인공지능 등 ICT가 접목되는 사례와 관련 기업들이 대거 생겨나고 있기 때문이다. 리걸테크란, 법률(legal)과 기술(technology)의 합성어로 ICT를 이용한 법률 정보기술을 의미한다. 금융계에서 핀테크가 있다면, 법률계에서는 리걸테크가 한 축을 구축할 것으로 전망된다.
리걸테크는 뉴욕과 샌프란시스코에서 매년 개최되는 세계에서 가장 큰 법률 기술 행사의 명칭으로 시작됐는데, 이 행사는 매년 200여 개 이상의 로펌과 기업 법무팀이 참여해 최신 법률 기술에 대한 정보를 발표하고 의견을 나누는 교류의 장으로 성장했다. 이후 리걸테크는 법률 서비스에 기술이 접목한 새로운 분야를 일컫는 말로 통용되기 시작했다.
리걸테크가 등장한 지 10여 년이 지났지만, 한국에서는 아직 생소한 용어다. 미국에서는 2011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장이 형성됐으며 관련 투자 역시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CB Insights에 따르면, 리걸테크 관련 스타트업 투자액은 2011년 9,100만 달러에서 2015년 2억 9,200만 달러로 4년간 3배 이상 증가했고, Mitratech는 법률서비스 소프트웨어 시장이 2015년 약 38억 2,800만 달러에서 2019년 57억 6,300만 달러 규모로 성장한다고 전망하기도 했다. 2016년 현재 미국에서만 1,100여 개의 리걸테크 기업이 활동하고 있다.


AI 변호사의 등장

앞서 언급했듯이 리걸테크는 미국을 중심으로 성장하고 있다. 초기의 리걸테크는 판례 수집 등 리서치나 문서 증거 분석과 같은 방대한 양의 정보를 처리하는 기술이 주를 이뤘다. 지난 5월, 100년의 역사를 지닌 미국 뉴욕의 대형 로펌인 베이커앤드호스테틀러(Baker & Hostetler)는 스타트업 로스 인텔리전스(ROSS Intelligence)가 개발한 AI 변호사 로스(Ross)를 사용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로스는 파산 관련 판례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업무를 수행하게 됐는데, IBM의 인공지능인 왓슨을 기반으로 제작됐다.
로스는 단순히 키워드가 일치하는 문서를 나열하는 것과는 달리, 사람의 일상 언어를 이해하고 초당 10억 장의 법률문서를 분석해 질문에 맞는 답변을 만들어낸다. 또한 질문과 답변, 새로운 판례와 법률을 계속해서 학습하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똑똑해진다.
리걸테크는 로스와 같은 리서치 및 정보처리에 활용되는 범주를 넘어 자동화된 서류 작성, 법률자문 시스템 등 다양한 분야로 확대되고 있다. 금융 관련 정보제공 서비스를 하고 있는 블룸버그는 2011년 실시간 검사, 검색 및 분석, 블룸버그 메시지 및 사내 이메일 기록등의 기능을 통합한 최초의 규제 준수 솔루션인 블룸버그 볼트(Bloomberg Vault)를 위한 새로운 실시간 검색·분석서비스를 ‘리걸테크 뉴욕 2011’에서 선보인 바 있다.
 
블룸버그 볼트는 금융회사와 기업들이 규제준수, 전자증거개시(e-Discovery) 등의 요구사항을 충족하며 동시에 비용절감이 가능한 정보제공과 규제준수를 위해 출시한 것으로, 규제사항 변동, 소송위험 증가, 통신량 급증으로 다양한 문제점에 봉착한 금융서비스 기업들에게 규정에 따른 커뮤니케이션 자동 감시, 종합적인 규제 흐름관리를 위한 콘솔 검토, 전자증거개시 절차 지원 등을 제공한다.
또한 미국 스탠포드대학교는 로스쿨내에 코드엑스(CodeX) 프로젝트 센터를 설립했다. 코드엑스에서는 매년 컨퍼런스가 열리고 있으며 다양한 스타트업을 지원하고 있다. 5월에 열린 컨퍼런스에서는 빈민층을 위한 법률자문 자동 시스템 등 법률 솔루션을 제공하는 프로그램까지 다양하게 소개되기도 했다.


주디카타, 원하는 법률과 판례 찾아준다

현대경제연구원의 전해영 선임연구원은 보고서 ‘리걸테크 산업 현황과 시사점’을 통해 리걸테크의 유망 분야로 법률 검색, 변호사 검색, 전자증거개시, 법률 자문 및 전략 수립 등이 전망된다고 발표했다. 법률 검색은 판사, 검사, 변호사에 이르기까지 법률 서비스를 수행하기 위한 기본 업무에 해당한다. 양질의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방대한 양의 법령, 판례, 논문, 양형 기준 등을 꼼꼼히 살펴야 하므로 상당한 노력과 시간이 투입된다. 이러한 자료들은 대부분 텍스트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빅데이터, 인공지능의 활용으로 업무 효율화를 기대해 볼 수 있다.
 
일례로 미국의 스타트업인 주디카타(Judicata)는 기계학습과 자연언어 처리 기술을 이용해 법리와 판례 등이 담긴 문서를 구조화된 정보로 바꿔주는 기술을 개발했다. 주디카타는 스탠포드대학교 로스쿨의 코드엑스 프로젝트가 배출한 스타트업 중 하나로, 사용자가 원하는 검색 조건을 입력하면 방대한 법률 및 판례 DB로부터 원하는 정보를 추출해 문서 형태로 제공해준다. 예를 들어, ‘외교상 기밀누설죄, 군사기밀 보호법 위반’에 관한 기존 판례를 찾아주기 때문에 변호사가 도서관을 가거나 판례집, 논문 등을 검색하는 데 드는 막대한 시간을 절약해준다.
국내에서는 인텔리콘 메타연구소가 지능형 법률정보시스템인 아이리스(i-LIS) 개발에 성공해 2017년 상용화를 앞두고 있다. 아이리스는 판례와 법률정보 검색 및 질의응답을 기본 기능으로 갖추고 있으며, 간단한 단어 검색만으로도 관련 판례와 법령 정보를 찾아볼 수 있고, 법률 용어에 익숙하지 않은 일반인의 법률적 질문에도 답변할 수 있도록 개발됐다.


렉수, 정보의 비대칭 문제 해결

변호사 검색 서비스는 일반인이 변호사의 경력, 사건 수임 비용 등 변호사 정보 접근성이 매우 제한적이다. 이러한 정보 비대칭적인 시장에 ICT를 활용해 법률적 장벽, 정보의 비대칭성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기업이 등장하고 있다. 영국의 렉수(Lexoo)는 법률상담을 원하는 고객이 자신이 직면한 상황을 기재하면 어떤 법률 서비스를 받아야 하는지 알려주고 그에 맞는 변호사들이 서비스를 제안할 수 있도록 했다. 여러 변호사의 의견을 동시에 들어볼 수 있으며, 고객 입장에서 다양한 정보를 접할 수 있어 정보의 비대칭성 문제를 감소할 수 있다.
국내에도 비슷한 서비스를 하고 있는 회사가 있다. 헬프미는 온라인 변호사 검색 및 법률상담 플랫폼을 제공하고 있는데, 고객은 변호사의 정보를 미리 확인하고 다른 이용자의 상담후기를 확인할 수 있다. 로앤컴퍼니도 상황에 맞는 변호사를 찾아 상담받고 선임까지 할 수 있는 O2O 플랫폼 로톡(Lawtalk)과 변호사가 사건 기일을 쉽게 관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애플리케이션인 로매니저(LawManager)를 운영하고 있다.


로직컬, 클라우드 기반 디지털 증거 서비스

전자증거개시(e-Discovery)는 소송 준비 과정에서 소송과 관련한 증거를 수집·공개하는 제도로 영국이나 미국에서는 재판이 열릴 때 반드시 거쳐야 하는 절차다. 전자증거개시는 기존의 종이문서 등 아날로그 증거에 컴퓨터 파일 등 디지털 증가를 추가한 것이다. 전자증거개시 분야는 관련 소프트웨어 및 서비스가 빠르게 성장함에 따라 2015년 기준으로 마켓앤마켓(Market and Markets)에서 약 75억 달러, IDC는 100억 달러 규모로 추정한 바 있다.
 
전자증거개시와 관 련 한 기업으로는 미국의 디스코(Disco)와 로직컬(Logikcull)이 있다. 디스코는 다양한 형태의 전자문서를 검색하고 정보를 추출하는 문서 검색 기능, 법률 문서를 쉽게 작성하고 항목 추가, 편집, 삭제가 가능한 문서 관리 도구, 증거 문건의 추출, 편집, 인쇄 등이 가능한 문건 준비 등의 서비스를 하고 있다. 로직컬의 경우는 클라우드 기반의 전자증거개시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는데, 고객과의 이메일, 전자적 형태로 수집된 기타 문건을 일자, 주제, 이해관계자 등으로 분류하여 저장하며, 증거 문건은 서버에 저장된 모든 문건을 검색해 관련 증거를 추출하고 문서화한다.


피지컬노트, 입법안의 통과 예측정확도 94%

법률 서비스의 핵심은 승소 또는 입법 가능성을 높이는 전략 개발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법령, 최근의 판례 추이, 사건을 맡는 판검사의 성향, 수임사건의 특수성 등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법률 전략을 수립해야 하는데, 이는 무척 복잡하고 고도화된 작업이다. 따라서 혁신적인 글로벌 스타트업 기업들은 첨단 ICT를 활용해 수십만 건의 법령, 판례, 규제, 법률 논문 등을 자동으로 검색하고 분석해 판례의 추이를 살피고 특정 법률 전략의 성공 가능성을 예측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2014년 CNN이 선정한 ‘세계를 바꿀 10대 스타트업’에 선정된 바 있는 피스컬노트(FiscalNote)는 인공지능을 처음으로 적용한 법률 분석 플랫폼을 제공하고 있다. 초기 피스컬노트는 3개의 서비스로 구성되어 있었다. 법안이 상정됐을 경우 통과 여부를 예측하는 프로퍼시(Prophecy), 서비스와 연방정부 법안을 한눈에 보는 소나(Sona), 미국의 각 주정부 법령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아틀란티스(Atlantis)가 그것이다.
하지만 2016년 4월, 피스컬노트는 플랫폼 안에서 모든 서비스를 이용하도록 하고 사용자 편의성을 높이기 위해 서비스 구분을 없앴다. 피스컬노트는 법안 상정부터 시행, 법안에 관여한 의원까지 인포그래픽화했다. 키워드 검색에서도 강점을 보이고 있어서 이슈, 의원 이름 등 키워드를 입력하면 이와 관련한 법안이 주별, 분기별, 처리상황 등으로 구분돼 상세한 정보를 제공한다. 특히 피스컬노트에서 파악한 상임위원회 및 본회의에서 상정된 입법안의 통과 예측 정확도는 94%에 달한다. 현재 피스컬노트에는 입법기관인 미국의 민주당,
공화당 등 정치권은 물론이고 마이크로소프트, 우버, AT&T, 사우스웨스트항공 등 200여 개의 기업과 NGO까지 다양하다.
한편 피스컬노트는 올해 4월 26일 구글캠퍼스 서울에 한국법인인 피스컬노트 코리아를 설립했다. 피스컬노트 코리아는 한국에 맞는 서비스를 위해 국내시장조사와 서비스를 계획 중이며, 지난 지방선거에서 이슈가 된 선거관리위원회 DB를 이용한 ‘우리동네후보’를 개발한 스테이영을 인수 후 앱 운영을 지속하고 있다.
피스컬노트가 인공지능을 활용하고 있다면, 미국의 렉스 마키나(Lex Machina)는 데이터마이닝을 기반으로 법률, 판례 추이 등을 분석해 각기 다른 법률 전략에 따라 법원에서 어떻게 판결이 날 지를 예측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변호사에게 판결 예측을 통한 소송 전략 수립을 돕고 있다. 렉스 마키나는 연방법원 판사별로 사건 경험, 평균 소요시간, 관련 사건의 승패소율, 손해배상액의 중간 값 등의 비교표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주요 로펌별 사건 경험과 역할, 승소율, 합의율, 승소액 등의 비교표를 볼 수 있다. 이러한 자료를 토대로 고객의 요구에 따라 특정 법원의 특정 판사가 특정 사건에서 특정 로펌이 대리한 사건을 맡을 경우 각 수치의 예상 값 등 다양한 조합의 비교표를 만들어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한다.
그렇다면 변호사, 판사 등 법률가를 인공지능이 대신할 날이 과연 올 수 있을까? 이에 대한 전망은 엇갈리는 분위기다. 가능성에 대해 기대감을 표출하는 이들도 있지만, 반대의 의견도 만만치 않다. 렉스 마키나 설립자인 조슈아 워커(Joshua Walker) 박사는 10월 18일, 한국 대법원이 개최한 ‘2016 국제법률 심포지엄’에 참석해 “인공지능은 인간의 능력을 대체할 수 없을 것”이라며 “다만 인공지능은 법률가들이 더욱 나은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분쟁 해결에 결정적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공지능이 아무리 발달하더라도 인간의 역할과 기계의 역할은 뚜렷이 구분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향후 판례와 객관적인 지표 등을 토대로 사용자가 판결을 미리 예측하고 비용책정 및 법률 전략을 세울 수 있다는 측면에서 리걸테크는 법률 서비스를 이용해야 할 사용자 입장에서 매우 진일보한 분야임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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